달아난다. 화분이, 의자가, 약봉지가, 꽃들이
꽃 같은 약속이, 읽지도 않은 책들에 바통을 넘긴다
숨을 헉헉거리며 허공으로 달아난다
연기가 되어 달아나면서 사라진 얼굴을 갈아입는다
여섯 살 동생이, 할머니가, 나를 버린 남자가
흐물흐물 춤을 추며, 다시 연락하겠다, 낄낄거리며 달아난다
연기가 사라지는 하늘엔 자주 먹구름이 끼고
연기에 취한 집들은 쉬지 않고 쓰레기를 낳고
갈수록 의자가, 꽃들이 한 자루에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쓰레기가 펑펑 솟는, 창가에 앉아 굴뚝은
터질 듯이 불룩한 하루를 피운다
의자를, 화분을, 일회용 꽃들을 뻑뻑 피운다
가끔 달아나고 싶은 사람들도 피운다
필터만 남은 여자 하나 비 내리는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장성혜(1957~) ‘소각장 근처’ 일부황
소각장 굴뚝으로 연기가 올라간다. 시인과 함께 했던 것들은 바람을 타고 가볍게 달아난다. 존재의 소멸이 이루어지는, 이때의 연기는 그의 기억과 오버랩 된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소멸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취하고 버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소각장의 의미는 이렇듯이 단순함을 훌쩍 뛰어넘고, 담배를 태우는 행위 역시 일종의 소각행위로 보고 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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