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사이족 대추장이 된 한인 선교사
▶ “세상을 변화시킨건 하나님에 붙들린 약한 사람”
하나님 말씀 듣고 무작정 아프리카 선교 나서
죽을 고비 몇차례 넘기고 지도자로 추앙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약한 사람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용맹하고 전투적인 아프리카 마사오족의 대추장으로 추대된 안찬호 선교사는 분명 약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저서 이름대로 하나님의 “들어쓰심”에 순종했고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아프리카 오지에서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는 애당초 선교사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현지 문화나 언어를 미리 습득하는 따위(?)의 노력은 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무식한 믿음”과 현지에서 언어와 문화를 직접 배운다는 일념으로 마사이족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는 마사이족 부락에 들어가면서부터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또 이후에는 본의 아닌 실수도 연발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만으로 35만 마사이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성공했고 오늘날에는 30여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세우는 역사를 일궈냈다.
약 20년 전에 혈혈단신 마사오족 부락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이제는 그들의 대추장이요, 하나님 말씀의 전도사가 된 안찬호 선교사가 지난 주 애틀랜타를 방문했다.
지난 3일 익투스 장로교회에서 있었던 안찬호 선교사의 선교초기의 생생한 간증을 요약했다.
나는 1952년 충남 연기에서 출생했다. 집안이 가난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19살의 나이에 군대에 들어갔다. 그것도 악명 높은 공수부대였지만 나는 그곳이 좋았다. 먹을 것은 물론 입을 것과 잘 곳이 모두 공짜로 해결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려 7년간 복무했다.
제대 후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나를 오라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삼척 탄광에서 7년간의 광부생활을 했고 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접”하게 됐다.
그 곳 생활을 마친 후 신학교를 졸업하게 됐고 80년대 말에 아프리카로 선교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것을 계기로 아프리카로 영원히 가라는 하나님의 명을 들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고 아이들도 걱정됐지만 순종했다. 그래서 1991년 3월 18일 3일분의 식량을 담은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마침내 케냐의 마사이족 땅을 밟았다.
마중 나온 원주민을 따라 무려 7시간을 걷고 나니 그 원주민은 이 이상은 위험하다면서 돌아가 버렸다. 원주민이 떠나 버린 뒤 머리에 사자털을 뒤집어 쓰고 얼굴과 몸에는 핏칠을 한 마사오족 7명이 나를 에워 싸고 가죽끈으로 묶어 나무에 매달았다. 그리고 뭔가를 물었지만 나는 아프리카말은 물론 영어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무조건 “예스”라고 크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놀라면서 내 옆구리를 창으로 쿡 찌르더니 다시 한번 나에게 뭔가를 물었다. 뭔가 잘못돼 간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이번에는 “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한창 얘기한 후 조용히 다시 물었다.
이번 나의 대답은 “오케이”였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 마음대로 하라는 마음의 고백이었다.
이렇게 세 번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자 그들은 나를 풀어주더니 그 중 제일 높아 보이는 마사오족이 나를 끌어안고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동안의 두려움도 잠시 너무 화가 난 나는 죽기살기로 그의 얼굴에 침을 뱉어버렸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예상과는 달리 나는 그날 저녁 소똥으로 만들어진 집으로 안내됐고 안에는 여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마사오족 추장의 세번째 부인이었다(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들의 지도자로 추앙 받았고 결국 대추장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그들이 나에게 한 첫번째 질문은 “이곳에 들어 오면 죽는다. 그래도 들어 오겠는가”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살려주면 이곳을 나가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세번째는 “그렇다면 우리와 영원히 살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들이 원한 것과 내 대답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나와 달리 미리 현지 언어를 미리 배웠던 이전의 선교사들은 똑 같은 질문에 겁을 먹고 나와는 다른 대답을 했고 그들 중 일부는 그들의 창에 찔려 죽음을 당했다.
또 얼굴에 침을 뱉는 것도 상대방을 환영한다는 의식(물이 부족해 자기 몸 속의 물을 상대방에게 선사한다는 의미)이었고 자기의 부인에게 귀한 손님을 접대(?)하게 하는 것도 역시 그들의 오랜 관습이었다.
하여간 그 모든 것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주님이 예비하신 결과였다.
이후 나는 이미 말한대로 그들의 대추장이 됐다. 물론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들과 생활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는 인근 부족과 전쟁을 해 36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당연히 마사오족의 관습대로 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회개하고 있다.
언어란 무엇인가? 우리가 알아듣는 언어가 과연 몇 가지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의 언어가 있고 반대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언어가 있지만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영적인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영적인 언어로 인해 그들과 나는 같이 생활할 수 있고 나눌 수 있었다.
또 하나님은 잘나고 많이 배운 사람도 사용하시지만 나 같이 무식하고 모자란 사람을 들어 쓰신다. 하나님이 들어 쓰시고자 할 때 그저 순종하면 된다.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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