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셨나요?
토끼는 거북이와 경주하면 진다. 약 2,600년 전 고대 그리스 사람 이솝이 쓴 우화의 각본대로 경주 도중 반드시 낮잠을 자야하기 때문이다.
토끼가 뜀박질은 거북에게 질는지 몰라도 머리싸움에선 이긴다. ‘별주부전’이라는 한국 옛날얘기(이조 정조 시대, 작자미상)의 각본 때문이다.
용궁구경을 시켜주겠다는 거북(자라)의 등에 업혀 물속으로 들어가던 토끼는 자기 간을 빼 병든 용왕의 약으로 쓰려는 거북의 간계를 눈치 챈다. 정신이 번쩍 든 토끼는 “거북아, 토끼 간은 자주 빼서 햇볕에 말려야 약이 된단다. 나도 집에 빼놓고 왔으니 가서 가져오자”고 속여 뭍으로 올라오게 한 후 단걸음에 뺑소니쳤다.
수천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과 그리스의 우화가 똑같이 토끼와 거북이를 대결시킨 게 묘하다. 이솝은 ‘꾸준함이 재빠름보다 낫다’는 교훈을, 별주부전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지혜를 독자들에게 주려고 쓴 것 같다.
이솝우화의 경주는 토끼에겐 100m ‘스프린트’지만 거북에겐 풀코스 마라톤이었을 것이다. 애당초 거북이가 경주에 응한 것도 언감생심 토끼를 이기겠다는 경쟁심보다는 ‘걷기 마라톤’으로라도 반드시 목표까지 가겠다는 집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북이는 네발동물 중 유일하게 못 뛴다. 매사 ‘만만디’지만 느려서 손해 볼 일이 없다. 거북은 2억년전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다. 만약 느린 것이 문제라면 오래전에 멸종됐거나 긴긴 세월동안 다리가 토끼처럼 진화됐을 법하다. 거북은 느려도 토끼보다 훨씬 오래 산다. 200~300년 장수하는 놈도 있다. 그래서 ‘십장생(十長生)’에 낀다.
물론 느린 걸음걸이가 거북이의 장수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뛰는 토끼에게 걸어서 이긴 거북이의 교훈은 따로 있다. 그 교훈을 살린 것이 한국일보(서울본사)가 31년 전 시작한 ‘거북이 마라톤’이다. 오는 17일에도 남산 순환도로에서 382번째 월례 거북이 마라톤이 벌어진다. 남녀노소 수천명이 떼 지어 거북이처럼 7km를 유유자적 걷는다.
걸으면 체력이 증진되고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고혈압· 당뇨병· 비만· 치매· 골다공증 등 성인병이 예방되거나 개선된다는 건 진부한 상식이다. 일상적으로 걸었던 조상들보다 요즘 사람들이 성인병에 더 많이 걸리는 원인은 조물주의 섭리대로 두 다리를 사용해 열심히 걷기보다 차를 더 많이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천수(天壽)는 다리로부터 온다.
시애틀에서도 서울보다 하루 먼저인 16일 거북이 마라톤이 열린다. 지난 세 차례 대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일보 시애틀 지사가 주최한다. 이번에도 참가자들은 당일 아침 한우리축제가 개막되는 페더럴웨이의 커먼스 몰 주차장을 출발해 인근 셀리브레이션 공원까지 완만한 왕복 4마일 길을 삼삼오오 걸으며 주류사회에 한인파워를 과시하게 된다.
예년과 달리 올해 거북이 마라톤은 시애틀 한인등산회가 특별협찬 한다. 등록회원이 150여명에 이르는 이 등산회는 시애틀 일원의 높고 낮은 산을 모두 섭렵했을 뿐 아니라 레이니어 산(캠프 뮈어)에도 세 차례나 올랐다. 이날 하루는 회원들이 산에 가지 않고 거북이 마라톤에 참가해 한인들을 대상으로 등산인구 저변확대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시애틀 일원엔 공원길과 호반길이 산재해 있을뿐더러 주말 걷기운동에 안성맞춤인 등산로가 1~2시간 거리에 즐비하다. 거북이 마라톤에 많은 애독자들이 참여해 이솝우화와 별주부전의 지혜를 되새겼으면 좋겠다. 등산회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금상첨화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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