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마리 표범 가죽 이어 만든 국보급 유물
한국전쟁중 미국유출 →주미대사관 반환 →?
폭 8피트, 길이 18.5피트. 표범 48마리를 이어 붙여 만든 희귀한 양탄자. 비운에 스러져간 명성황후가 사용했다던 이 국보급 양탄자는 어디로 사라졌나. 대한제국 명성황후의 접견실에 깔려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표범 양탄자가 미국으로 유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 한국과 워싱턴의 뜨거운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민들에게 잊혀졌던 명성황후 표범 양탄자의 행방은 해외유출 문화재 환수운동을 벌이고 있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대표 김원웅)’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다.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관련된 유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단체가 미국의 잡지 ‘라이프’의 1951년 8월 보도에서 확인한 것이다.
당시 라이프 지는 ‘병장의 기념품(The Sergeant’s Souvenir)’이라는 기사의 제목으로 “이 카펫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에브론 길트너가 서울의 한 고미술상을 통해 당시 25달러를 주고 사들인 뒤 1951년 6월16일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부모에게 보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라이프지 기사 등에 따르면 모피를 받은 에브론 병장의 부모는 이 값진 물건을 팔려고 모피 판매상에게 내놓았으나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뉴욕의 한국 총영사관은 경복궁 명성황후 궁실에서 도난당한 것이라며 반환을 요청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이 보물에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아마도 10만 달러의 가치는 될 것”이라는 데이비드 남궁(한국명: 남궁염) 총영사의 말을 소개하며 명성황후 양탄자 기사를 다뤘다.
미 정부는 한국 측의 요구를 수용해 콜로라도주 덴버의 세관을 통해 에브론 병장의 부모가 갖고 있던 표범 양탄자를 압수했다. 메릴랜드에 소재한 미 국립공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 기록에 따르면 이 표범 양탄자는 1952년 8월부터 1953년 2월 사이에 워싱턴의 한국대사관(대사 양유찬)으로 반환됐다.
그러나 명성황후 표범 양탄자의 기구한 유전(流轉) 드라마는 여기서 막을 내린다. 한국 반환 사실을 확인한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문화재청과 국가기록보존소, 외교부 등에 명성황후 양탄자의 소재를 문의했지만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미국에선 한국대사관에 반환된 기록이 있지만 한국에선 이를 접수하거나 소장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행방이 묘연해진 표범 양탄자의 소재지를 찾기 위해 이 단체는 18일(한국시간) 감사원에 국민감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 양탄자가 한국이 당시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인 만큼 주미대사관이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한국으로 보내졌으나 정부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명성황후 양탄자의 행방이 이슈화되면서 주미대사관에서는 사실 확인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소재 파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60년 전의 오래된 일인데다 전시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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