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면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 본 적이 없었다. 유럽 여행도 하지 못했기에 8년 전, 처음 캐나다 국경을 차로 넘을 때, 묘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국경 부근 아슬아슬한 밤을 노래한 시처럼 몰래 넘는 자들의 조바심이 괜히 내게도 생겨났었다.
그래도, 캐나다 국경을 넘어갈 때는 예쁜 인형마을에 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미국과 비슷한데 좀 더 아기자기한 느낌이라 그랬나 보다.
며칠 전 샌디에고를 거쳐 멕시코 티후아나에 다녀왔다. 정확히 말하면 로싸리토였는데, 처음 지나는 멕시코 국경에서의 느낌은 달랐다. 황량한 5번 도로 한 고개 넘어서니 고향 시가지가 펼쳐진 듯 울컥했다. 멕시코 국경으로 들어 가는 길이 동대문 앞 이대병원 교차로 같았다. 보도까지 뒤덮은 상점의 물건과 줄 서있는 차들에 대고 음식과 옷가지를 파는 상인들. 그 속에서, 동대문 운동장 담 따라 서던 포장마차와 노점상을 볼 수 있어 사무치게 반가웠다. 산꼭대기까지 한 치의 틈도 없이 빽빽이 메운 낡은 집들은 지금은 사라진 예전 봉천동 같기도 했고 중계동, 아니 상도동 텃밭에 앉은 판자집들 같았다. 그 사이를 구비구비 지나는 샛길들도 집으로 둘러싼 부산의 도시산수화 그것 이었다.
커다란 멕시코 깃발에선 함성 소리가 들렸다. 때로 몰려다니는 인간의 물결이 살아있는 과밀한 나라의 살 냄새가 났다. 절벽 끝까지 달아 붙어 세워진 집들에서 철거직전의 긴장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의 언덕 위에도 망루와 깃발이 있어 저항의 울음이 들리는 듯. 그들이 누리는 오늘의 삶이 내겐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90년 대 초에도 서울 곳곳을 휩쓸던 철거 투쟁 자리처럼, 이들도 머지않아 개발이 시작되면 쫓겨 나리라. 운이 좋아 미국행이 이뤄지면 시급은 더 받겠지만 그래도 고향 등진 설움을 삭여야 하겠지.
이 구불구불 산 고개 따라 서러운 삶도 무거움 삶도 비집고 평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곧 개발 속에서 주인자리를 내줄 것이다. 여느 도시가 그러했다. 파리의 광장도 그런 고단한 인생들을 까뭉개고 들어섰고, 새로 등장한 청개천 인공천도 덮일 때 못지 않은 원성을 받으며 열렸다. 개발은 장사이기도 하고 통치 수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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