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유발하나 불편.."新 웃음코드 필요"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의 가학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언어적 학대까지 포함한다면 가학 논란에서 자유로운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과 ‘재미있으면 괜찮다’라는 의견이 대립한다.
이런 상황은 호불호를 떠나 가학적 소재가 그만큼 시청자의 관심을 유발하는 데 탁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웃으며 봐 줄 수 있는가다.
◇웃음과 고통 사이 외줄타기 = 웃음과 불편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프로그램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3일 방송된 KBS 2TV ‘개그콘서트’의 코너 ‘시간여행’은 가학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군인이 목이 쉰 후임에게 날계란을 먹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후임 역의 개그맨은 코너가 진행되는 5분간 날계란 20여개를 먹어야 했다.
개그맨이 괴로운 표정으로 날계란을 삼키는 장면은 그대로 전파를 탔고 방송 후 인터넷에는 ‘보기 거북했다’ ‘굳이 그래야 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 코너는 한 달 전에도 콜라 5병을 연거푸 마시는 모습을 선보여 논란이 됐다.
신체 학대 수준의 무리한 과제는 같은 프로그램의 인기 코너 ‘달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반응은 다르다. 비판보다는 호평이 많다. 과제가 어려울수록 ‘달인’ 김병만의 묘기는 빛을 발하고 재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추석특집으로 방영된 ‘달인쇼’에서 김병만은 수조 안에서 라면 먹기 미션을 성공시켜 갈채를 받았다. 보기 불편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인 티가 났다는 평이 대세였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윤정주 사무국장은 6일 "’달인’을 가학 코너라고 부르기에는 특수한 점이 있다"며 "김병만씨 본인이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얼리티를 내세운 예능 프로들도 때로 무리한 상황 설정으로 가학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겨울에 찬물에 들어가거나 고추냉이를 가득 넣은 음료를 마시는 상황은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무지막지한 벌칙을 내건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가학코드 대신 신선한 웃음 필요 = 웃음을 주는 프로에서 가학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는 큰 웃음을 위해서는 단순해야 한다는 개그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한 개그맨은 "몸으로 하는 개그는 동작이 크고 과장돼 사람들이 보기에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해하기 쉽고 큰 웃음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맥락에 대한 이해나 배경 지식 없이도 상황 자체로 빠른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 집중하다 보면 가학적 상황에 기대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문제는 가학적인 개그가 흥미를 돋울 수는 있어도 개그가 애초 목적으로 하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개그가 독할수록 웃음보다는 고통을 안겨줄 가능성이 커진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 가학성에 공감하기 쉽다"며 "가학적인 방식으로 웃음을 야기하는 건 고문을 통해서 자백을 받아내려는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민우회 윤정주 사무국장은 "예전만큼 아이들이 따라하지는 않지만 가학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건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연기자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측면에서 문제"라며 "가학 없이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웃음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웃음을 줘야하는 프로들이 거꾸로 고통을 준다는 비판에 대해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정서를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지나친 잣대로 개그가 위축되는 것을 우려했다.
’개그콘서트’ 김석현 PD는 "그런 부분을 즐기는 분도 있고 괴로워하시는 분들도 있다. 일부러 불편함을 드리려 한 건 아니었다"며 "’오버 페이스’ 하게 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개그를 너무 안 좋게 보시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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