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애가 돌이 지났는데 아직도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지 뭐야.”
타주에 사는 며느리 칭찬을 하던 선배가 말했다. 함께 있던 선배 몇이 맞장구를 쳤다. 아이가 오빠라는 말을 이해할 때쯤 되어도 남편의 호칭을 바꾸지 못하면 어떡하는가, 걱정을 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보탤 수가 없었다.
나 역시 호칭 때문에 지적을 당했고, 고민 중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시댁에 일이 있어 서울을 방문했을 때였다. 식구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3년 만에 만난 사촌 동서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형님, 아직도 삼촌이 뭐예요. 서방님이지요. 안 그래도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넌지시 말씀하셨어요.”
아버님은 그런 분이셨다. 한 번도 내게 꾸지람이나 싫은 소리를 하신 적이 없다. 아마도 동서끼리는 그런 말을 들어도 무안해하지 않으리라 믿으시고 기회가 되면 일러주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유언이나 마찬가지인데 들으셔야지요.”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대신해서 시동생/삼촌/서방님이 얼른 나서서 말했다.
“그저 애칭이라고 생각하면 되지요.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요.”
몰라서 그렇게 못 부르는 게 아니다. 알지만 민망해서 그 호칭을 쓸 수가 없다. 서방님이란 호칭은 남편을 공대하여 이르는 말이 아닌가. 어찌 시동생이 결혼하였다하여 남편과 같은 호칭으로 부른단 말인가.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이 황당한 호칭이 어찌해서 유래되었는가 알아보기로 했다.
그 내력은 이렇다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남자가 장가를 들면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거의 다 낳을 때까지 신부의 집 즉 처가에서 살았다고 한다. 즉 당시에는 남녀가 결혼을 하면 신부가 시댁으로 와서 시집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남자가 신부의 집으로 들어가 처가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위를 보게 되면 처가에서 사위가 묵을 방을 마련해 줬는데, 집에서 서쪽에 위치한 곳에다 방을 정해 줬기 때문에 사위가 묵는 방을 ‘서쪽에 있는 방’ 즉 ‘서방(西房))’이라고 불렀는데, 옛날에는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 사람이 묵고 있는 집 즉 ‘당호’나 ‘택호’를 대신 불렀다고 한다.
그리하여 처가에서도 그 집안의 사위를 부를 때 이름 대신 사위가 묵고 있는 방 즉 ‘서방’을 대신 불렀다고 한다. 장인이나 장모는 ‘김서방’, ‘이서방’ 식으로 부르며 그 집안의 하인들은 ‘서방님’이라고 존칭을 붙여서 불렸다고 한다. 즉 결혼한 남자들은 처가에선 모두 ‘서방’에 해당되는데, 결혼한 시동생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처가의 호칭을 그대로 불렀다고 봐야 된다는 것이다.
즉 ‘서방’이란 호칭은 딱히 특정인에게만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일반명인 것이다. 결혼한 남자들은 모두 ‘서방’이 되는 것이다. 아버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이래도 결혼한 시동생에게‘서방님’이라는 호칭을 꼭 써야하는지 모르겠다.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빙그레 웃으시는 아버님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삼촌은 영원한 삼촌이에요, 서방님.
이영옥 /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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