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근 영(목사)
필자가 어렸을 때 나의 집을 지어주신 늙은 목수 한 분이 어머니와 대화하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사모님! 목수면 다 같은 목수입니까?”였다. 즉 자신은 요즘 젊은 목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 목수는 노련한 솜씨로 우리 집을 아름답게 지어주었고 나는 그 집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서울 모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고 면접시험때 교수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네 아버지가 목수(牧師)냐?” “아닙니다. 목사(牧師)이십니다” 나는 목수란 한문글자 위에, 점 하나 찍지 않은 잘못으로 그 면접시험에서 낙방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리고 또 본의 아니게 목사이신 아버지를 목수로 둔갑시킨 불효자가 되었다.
그런 후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 받던 날, 내가 존경하던 한 원로목사의 축사 즉, “목사면 다 같은 목사냐?”는 내용을 듣고 어쩌면 어릴 때 들었던, 그 내용과 너무 흡사했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필자가 인수받은 지 근 삼십여년이 지났지만 이 축사가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내 마음 한구석을 자리하고 있다.
요즘에야 산업사회란 이유로 아침 5시 반 또는 해뜨는 6시 반 아니면 7시가 다 된 시간에도 새벽기도회란 이름을 붙여 아침 기도회를 드리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엄격히 오경 중반, 첫 닭이 우는 새벽 4시에 맞춰 설교하려면 적어도 삼십분 전에는 괘종소리에 잠을 깨 세수하고 넥타이를 매만져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목사란 직업이 새벽기도만 없다면 꽤 괜찮은 직업인데...”하면서 아쉬워 했었다. 그리고 “이 새벽기도 때문에 이 짓 못해 먹겠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하게 된 것은 조금 더 지나서이다. 이 새벽기도 문제는 비단 새벽잠 많은 필자뿐만 아니고 비교적 새벽잠이 없으신 부친도 상당히 신경 쓴 분야이다.
아버지날을 보내고 이미 고인이 된 부친의 새벽기도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 한 토막을 소개한다면 한번은 전날 저녁 좀 늦게 주무신 탓인지 새벽기도시간 넘게 일어나셔서 얼마나 다급하셨으면 속옷 바람에 넥타이만 매시고 바지도 입지 않은 채로 달려가 새벽강단에 서신 코메디같은 해프닝이 있었다.
어쨌든 한국교회의 대부흥은 이 ‘귀찮은(?)’ 새벽기도가 밑거름이 된 것을 감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오래 전 필자가 한국에서 목회할 때 경주 모 호텔 부페에 초대받아 그렇게 많은 산해진미가 진열된 것을 처음 보았다. 나는 동행한 H목사와 경쟁이나 하듯 정신을 못 차렸으니 그 다음날 소문에 의하면 새벽기도만큼은 개근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H목사님, 그가 몸이 불편하여 새벽기도를 결석하셨단다.
필자 역시 같은 증상으로 집에서 새벽기도를 하였다. 차제에 나는 옛날 나를 낙방시킨 그 교수님께 항의하고 싶다. :“교수님, 목사면 어떻고 목수면 어떻습니까? 예수님도 사실 목수 아닙니까? 겨우 점하나 찍지 못한 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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