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3월26일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희한한 구경거리가 연출됐다. 매리너스와 시혹스가 22년간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킹 돔이 순식간에 폭삭 무너졌다. 건물 철거 전문업체의 다이너마이트 기술조작으로 대형 돔 건물이 질서정연하게 안쪽으로 스러졌다. 하늘을 뒤덮은 먼지가 가라앉은 후 웅장했던 킹 돔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콘크리트 무더기만 그 자리에 쌓여 있었다.
그 뒤 1년 6개월 만인 2001년 9월11일, 그보다 훨씬 더 희한하고 끔찍한 건물 폭파가 미국 심장부의 지축을 흔들었다. 한동안 세계 최고층 건물로 군림했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알카에다 테러범들이 납치한 대형 여객기 두 대가 잇달아 충돌하면서 화염에 휩싸인 110층짜리 마천루가 마치 비 맞은 모래성처럼 어이없이 주르르 녹아 내렸다. 킹 돔의 최후가 연상됐다.
9?11은 흔히 ‘제2의 진주만 공격’으로 불리지만 미국 역사상 본토 심장부가 외부 공격으로 대파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코가 한방에 납작해졌다. 무역센터 안에 있던 세계 90여개국의 2,500~3,0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한인도 21명 포함됐다. 뉴욕 증권시장이 폐쇄됐고,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국제항공편이 막히는 등 경제적,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
내일 9?11사태 10주년 기념행사가 참사현장인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다. 알카에다의 최대 비호세력이었던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2006년 12월30일 처형됐고,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도 지난 5월1일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안가를 급습한 ‘네이비 실’(미 해군특공대)에 의해 사살돼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10년만에 승리를 선언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이미 61년 전에 ‘테러와의 전쟁’에서 세계 전투사상 길이 빛날 전과를 올렸다. 6·25 기습남침 후 양민학살 등 북한군의 테러가 자행되고 있던 서울을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89일만에 탈환한 ‘9·28 수복’이다. 북한군의 허를 찌르는 상륙작전으로 한국동란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은 미국은 꼭 51년 후 알카에다 자살특공대에 허를 찔리는 9·11 테러 공격을 당했다.
그러고 보니 9월은 잔인한 달이다. 1일은 독일의 폴랜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시작된 날이다(1939년). 구 소련 전투기가 대한항공 여객기 007편을 격추시킨 것도 1일(1983년)이다. 5일엔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인 ‘검은 구월단’이 뮌헨 올림픽 선수촌을 급습해 이스라엘 선수들을 참살했다(1972년). 나폴레옹 황제가 모스크바에 입성한 날(나중에 패주했지만)이 14일(1812년)이었다.
나치독일이 57일간의 런던 야간폭격을 7일(1940년) 시작했고 8일(1941년)엔 역시 독일군이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900여 일간 포위공격하기 시작했다. 조선을 침공한 왜군 병선 133척을 이순신 장군이 망가진 배 13척으로 수장시킨 명량대첩이 16일(1597년), 일본 테러단체 ‘적군파’가 129명이 탑승한 국내선 여객기를 북한으로 납치해간 ‘요도호 사건’이 28일(1977년) 발생했다.
9·11 사태 10주년 기념행사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나지는 않는다. 여행객들은 앞으로도 공항 검색대에서 계속 신발을 벗고 허리띠를 풀어야한다. 미국인들의 반이민정서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 1월 스포켄에서 벌어진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탄신일 기념 퍼레이드에서 폭탄테러 기도혐의로 체포된 30대는 백인 우월주의자를 자처했다. 테러대상이 유색인종이라는 뜻이다.
잔인한 9월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법륜스님이 5일 시애틀 강연에서 설파한 “매일아침 눈 뜰 때 살아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이 새삼 실감 있게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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