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부부가 함께 결혼식에 참석을 하면 축하금은 얼마씩 넣나요?” 어느 모임 장소에서 잘아는 부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한 질문이다. 같은 달에 세 곳에서 하는 결혼 피로연에 다 참석해야 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많이 된다고 한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한인들의 현실이지만 생활의식구조와 삶의 질이 향상되고 고급화 되는 현실이다 보니 무리를 해서라도 분위기와 격식을 제대로 갖춘 장소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하는 추세다.
보통 접시당 이백 불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하니 부부동반일 경우 그 부인이 하는 그런 고민은 어쩌면 대 부분의 우리가 안고 있는 부담과 고민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핑계를 찾지만 체면과 소속감 때문에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우리가 결혼했던 80년대는 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과 피로연을 같이 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이런 고민은 그때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형식이나 격식에 묶여있을 이유가 없으니 가는 사람 오는 사람 그리고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모두 가벼웠던 셈이다.
“초대하는 측에서 감당해야 하는 경비부담을 구태여 손님의 입장에서 같이 져야 할 것까지 없이 그냥 형편에 맞추면 되지요” 이렇게 조언은 했지만 현실에 합당한 대답인지는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선물이 물건이든 돈 봉투이든 성의와 진심으로 준비된 것이면 그 이상 최고의 선물은 없다고 여기는 것이 평소에 내가 믿고 주장하며 또한 실천하고자 하는 내 생활철학이다. 하지만 그 부인 고민의 근거는 마음끼리의 교환보다 왕래하는 물질로써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려는 풍조에 길 들어있는 자들로부터 자기 밥값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인색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과감하게 떨쳐내지 못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비단 결혼식뿐만 아니라 무슨 자선단체 모금행사나 후원회에 불려갈 때마다 사람들은 빚진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빚을 갚아야 하는 기분으로 고민을 한다. 이러한 고민과 갈등이 생기면 이미 그것은 민폐가 된다. 참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거나 진심으로 축하 하는 마음이면 남한테 꾸어서라도 주고 싶고 돕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人之常情) 이다. 하지만 체면과 안면 때문에 억지로 참석하게 되면 마치 내 것을 억지로 뺏긴 것처럼 불쾌하고 쓸데없는 뒷말만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초대하는 측 에서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여서 진심으로 축하하고 격려 해주기를 바랄 뿐 손님이 무엇을 얼마나 가져오는 것에 그리 신경이나 관심을 쓰게 되면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남의 눈, 남의 저울, 그리고 그들의 손가락을 대단히 중요시하는 정서에 길들여있기 때문에 결혼식이나 행사에 초대를 받으면 그 부인처럼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주고 싶은 마음이 그득하면 형편이 허락하는 만큼 베풀고 또 그럴 수 없는 형편이면 당당하게 넘길 줄 아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솔직한 자세가 차라리 구차스런 핑계나 변명을 더덕더덕 붙이는 것보다 백 배 나을 것이다.
건조한 환경을 끼고 살면서 서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부담과 고민을 안겨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늘도 맑고 화창해야 빨래도 깨끗하게 말려주듯이 진정한 축하나 격려도 깃털처럼 가벼운 걸음과 마음이 모여 있을 때 진심이 전해지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초대나 행사를 주관하는 측에서 초대장을 보내기 이전에 꼭 참석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 그리고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 또한 초대를 받은 측은 참석여부를 분명히 하여 준비하는 측에서 차질이 안 생기도록 미리 알려줄 줄도 아는 상식과 예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격조 높은 생활을 하는 현대인에 걸 맞는 행동양식과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하게 될 때 서로가 안아야 하는 부담과 피해도 줄이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세상일로 머리 속에 돌덩이를 쌓아놓고 있는데 그 부인은 초대를 받고 가나 안 가나 하는 일로 돌덩이 하나를 더 얹어 놓게 되는 셈이다. 그저 고무신을 신고 있는 가벼운 마음에 진심 하나 포장해서 들고 가도 환영 받는 건전한 세태를 기대하기엔 나도 세상도 너무 오염이 되었나 싶다.
이 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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