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도 결국 제 명에 못 죽고 왔구먼…저런, 머리에 맞았군. 자네는 고집불통 석두(石頭)라서 총알도 못 뚫을 줄 알았는데…”
“아 글쎄, ‘쏘지 마, 쏘지 마’하고 애원했는데도 반군 녀석이 쏘더라구. 당신은 가슴에 맞았었지? 강철심장도 별 수 없군 그래…”
박정희와 무아마르 카다피가 이틀 전 저승에서 해후한 후 나눴음직한 말이다. 두 사람 모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철권 독재자가 됐다. 육군소장 출신인 전자는 18년간, 대령출신인 후자는 무려 42년간 권좌를 누렸다. 전자는 심복부하의 손에, 후자는 반군병사의 손에 죽었다. 제삿날도 엿새 간격으로 비슷하다.
실제로 박통과 카다피는 생전에 인연이 있었다. 박통이 고속도로를 만들고 새마을 운동을 펼치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70년대 후반, 카다피는 한국 건설업체들에 각별한 배려를 베풀고 리비아에 진출하도록 도왔다. 그 후 지금까지 동아, 대우 등 한국 건설업체들이 리비아에서 수주한 공사 금액은 무려 366억 달러에 달한다. 건설경기가 절정에 달했던 80년대엔 한국 근로자 2만여 명이 리비아에서 일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박통이 헌정을 중단시키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돼 권력을 장악했듯이, 박통보다 8년 뒤인 1969년 9월1일 국왕의 외유를 틈타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 대위(당시 27세)도 ‘혁명지도 평의회’를 만들어 의장에 취임했다. 그는 한때 총리, 국방장관, 국가원수를 모두 겸직했지만 1979년 독재체제가 완벽해지자 모든 직책을 내놓고 혁명지도자라는 명예직만으로 나라를 독식해왔다.
비참하게 최후를 맞은 독재자라는 점에서도 둘은 비슷하다. 특히 카다피가 그랬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최후와 신기할 정도로 닮았다. 지난 8월 수도 트리폴리가 반군에 함락된 뒤 행방이 묘연했던 카다피는 고향 시르테의 하수구 토굴에 혼자 숨어 있다가 지난 20일 시민군에 붙잡혔다. 후세인도 지난 2003년 12월 13일 고향 티크리트 인근 아드와르 농가의 토굴에서 홀로 붙들려 나왔다. 화려한 대통령 궁이 아니었다. 추격군이 덮치자 “쏘지마, 쏘지마”라며 생명을 구걸한 점도 똑같다.
이들에 비하면 박통의 최후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1979년 10월26일 밤 측근들과 ‘기쁨조’가 배석한 안가의 술자리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중동의 미친 개’로 불린 카다피와 달리 박통은 독재자이긴 했지만 기적 같은 한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놓은 비전과 추진력을 갖춘 지도자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국민의 뇌리에 새겨진 박통의 이미지가 꼭 독재자만은 아니라는 것은 그의 후광을 입은 장녀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의 강력한 후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후세인에 이어 카다피도 끝내 개죽음을 당하자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북한의 철권 독재자 김정일에게 쏠린다. ‘깡패 정권’으로 불리는 김정일도 카다피와 인연이 없지 않다. 두 사람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적대 정책에 맞서 독자적 생존확보의 방편으로 핵무기 개발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추진했다. 지난 2003년 카다피가 국제원자력기구에 이실직고한 핵 시설에서 북한 제 우라늄이 발견됐었다.
물론 김정일은 후세인이나 카다피와는 다르다. 지금의 북한은 이씨조선과 일제 식민통치 이후 들어선 ‘김씨 조선’이며 3대째 세습이 이뤄지고 있는 실질적인 왕조이다. 국민이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격리돼 ‘아랍의 봄’ 바람이 여간해서 미치지 않는다.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인 김정은은 카다피의 말로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집착하며 국민을 한 층 더 옥죌 것이 뻔하다. 결과적으로 굶어죽는 어린이들이 계속 쏟아질 터이다.
그러나 북한 내에도 반체제 세력은 있다. 이미 붕괴조짐이 여기저기 드러나고 있다. 김정일 부자가 토굴에서 붙들려 나오며 “쏘지마”를 연발하는 환상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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