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타계 전 영국총리 마가렛 대처
▶ 3번연임 영국병 치유 양극화 심화 비판도 레어건과 냉전 종식
8일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마가렛 대처(87) 전 영국 총리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보수당을 이끌며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의 대표적 20세기 지도자다.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영국총리 가운데 유일하게 3번 연임을한 대처는 1959년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49년 켄트주 다트퍼드 선거구 보수당하원 후보로 처음 지명됐지만 두 차례 총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이후 재부무, 에너지부, 교육부 장관 등을 두루 거친 뒤 1975년 영국 사상 최초의 보수당 여성 당수가 됐다.
11년간의 재임 기간에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과감한 정책과 개혁을 통해 영국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당시 장기 불황에 빠진 영국 경제를 강인한 지도력으로 회생시켰으며 과감한 민영화와 사회복지 지출 삭감을
통해 1980년대 초 치솟던 인플레도잡았다.
경쟁력이 떨어진 공기업은 과감히 민영화하고 1984년 대대적인 탄광 노조의 파업을 강경 진압하면서‘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영국병’을 고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업자를 양산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이끌면서 영웅으로 떠올랐고, 미국과 협력해 냉전을 붕괴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집권 3기인 1990년 유럽통합에반대하면서 당 지도부의 반발에 부닥쳐 총리직에서 스스로 사퇴했으며 이듬해 5월에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92년 여왕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상원의원으로 활동을 재개했지만 2002년 뇌졸중을 겪으면서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대처 전 총리는 감리교 목사이자지자체 의원인 부친의 영향 아래 정치인의 소양을 쌓으며 성장했다. 옥스퍼드대 서머빌 칼리지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고서 콜체스터의 플라스틱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보수당 지역 조직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1951년 이혼한 사업가 데니스 대처와 결혼해 슬하에 쌍둥이 남매를 뒀다. 두 차례 하원 선거에 낙선하고야인으로 지내던 1953년에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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