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에 한국전 참전 김춘회씨
‘임전상승’자세로 뇌졸중 극복
6.25 전쟁이 터지던 해에 15살이었던 김춘회 씨는 미국에 온지 40년이 지났지만 개전 후 이틀간 서울 상공에 나타났던 인민군 비행기 6대의 모습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5,000 피트 이상 높은 곳에서 기총소사를 했던 인민군 비행기는 손바닥 만하게 보였고 총소리를 들으며 당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했었다.
그는 정식 군인 신분은 아니었지만, 또 십대 중반을 막 넘긴 나이였는데도 전투에 참여해 미군들과 인민군에 대항해 싸웠다. 소속부대는 본보에 보도됐던 바로 미8군 23연대 3대대다.
“오송산, 금화 고지에서 싸웠습니다. 민간인이었지만 각종 화기를 다뤄야 했고 제 허리춤에는 수류탄이 있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다급했죠.”
그는 한국전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1957년 정식으로 해병대에 다시 입대했다. 1960년 5월 병장 제대할 때까지 진해 보급정비단 등에서 근무했다.
“임전상승의 해병대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김 씨의 이 말은 허툰 고백이 아니다. 1972년 미국에 이민와 한식당 전주집을 운영했다. 그러다 1993년 심장마비를 겪었고 다시 중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돼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서 끝나느냐, 다시 일어서느냐는 기로에서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해병대에서 배운 정신으로 재활훈련에 들어갔다.
3, 4개월 후 보조기구를 이용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후 에지우드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하루도 빠짐 없이 애난데일 고등학교의 육상 트랙을 한 시간씩 돌고 있다.
“6.25 당시 한국 공군이 적기와 공중전을 벌인 사실을 아십니까?”
김 씨는 전쟁이 발발된 25일부터 이틀간 서울 하늘에서 세 번 나타난 인민군 비행기에 대한 기록이 잘못 알려져 있다며 정정하고 싶어했다. 25일 오후 2시 야크기 6대가 나타나 여의도 비행장에 기총 소사를 한 게 처음. 26일 다시 같은 6대의 야크기가 삼각산 쪽에서 날아와 여의도 공항에 기총소사를 가했다.
같은 날 세 번째 야크기가 출현했을 때는 한국 공군이 반응했다. 2차대전에서 맹위를 떨치던 ‘P 38’ 3대가 이륙했고 공중전이 벌어졌다. ‘쌍비행기’로 알려진 아군 비행기가 적기들을 감싸는 듯 하며 기총을 쏴댔다. 숫자는 적어도 성능이 훨씬 나아 보였다. 마침낸 줄행랑을 놓던 적기 가운데 한 대가 꼬리에에서 검은 연기를 뿜었고 나중이 임진강 쪽에 추락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김 씨는 “적기가 세 번 나타났지만 알려진 대로 폭탄을 투하하진 않았고 인명 피해도 사실상 없었다”며 “어쩌면 작은 일이지만 정확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증언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나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지만 많은 역전의 용사들에게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며 “이들의 스토리가 모두 아프지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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