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씨는 “아이들도 미국생활에 잘 적응해서 눌러앉고 싶었지만 영주권 스폰서를 찾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며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H씨처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워싱턴행을 한 ‘기러기 가족’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귀국 이삿짐을 취급하는 회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전에 없이 기러기 가족들의 귀국 짐이 늘었다”면서 “지난봄에는 하루에만 몇 건씩 문의전화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자녀를 동반한 엄마들이 미 체류를 위한 방편으로 다니는 I-20 발행 대학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한 대학의 관계자는 “지난 여름방학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 두려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대부분 미국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엄마 학생들”이라고 실상을 전했다. 이처럼 근년 들어 기러기 가족들이 귀국 이삿짐을 싸는 이유는 무엇보다 영주권을 얻을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 꼽힌다. 종래에는 학생비자로 체류하다 스폰서를 구해 취업이민 방식의 영주권 취득이 코스였으나 이제는 스폰서 구하기가 아예 어렵게 된 것. 한 이민변호사는 “미국의 불경기가 심화되면서 영주권 스폰서를 해줄 수 있는 자격을 유지하는 한인업체가 많지 않다”며 “영주권 스폰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다 한동안 대안으로 부상한 E-2(소액투자) 비자 취득도 그 허상이 드러나면서 기러기 가족들이 사실상 미국에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학생비자로 계속 머물 경우에 경제적 부담도 크지만 영주권 없이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했을 때 예상되는 학비 부담도 이들을 떠나게 하는 이유다. 3년의 워싱턴 생활을 마치고 곧 귀국한다는 버지니아 맥클린의 L씨는 “여러 경로로 영주권 스폰서를 구해보려 했으나 사기꾼 같은 사람들만 만났다”면서 “어차피 영주권 취득이 힘들 경우에 굳이 미국에 계속 살 필요가 없어졌다”고 귀국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특히 한국이 경기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적 현실도 귀국 러시의 한 이유다. 적지 않은 생활비와 학비를 대온 아버지들이 불경기로 비즈니스가 어려워지면서 가족들의 귀국을 종용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관련 업계는 워싱턴 지역의 기러기 가족 수를 최대 약 6-7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 상당수가 최근 1-2년 사이에 귀국 길에 올라 20% 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기러기 가족들의 귀국이 늘면서 가뜩이나 불경기에 시달리는 워싱턴 한인경제에 미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민변호사나 식당, 학원, 부동산업, 여행업 등 유관 비즈니스도 덩달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난데일의 이한길 이민변호사는 “고학력자 독립이민(NIW) 프로그램이나 투자이민의 확대로 그린카드 취득의 길이 새로 열리고 있으나 아직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 부족한 상태”라며 “영주권 취득 길이 넓어지고 한국경제가 회생하지 않으면 기러기 가족들의 귀국행은 계속 늘고 워싱턴 한인경제에 낀 먹구름도 쉬이 걷혀지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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