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에도 궁합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오케스트라, 훌륭한 지휘자라 해도 궁합이 맞지 않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부부나 다름없다. KBS 교향악단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최근 함신익 지휘자와의 반목으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KBS 교향악단이 함신익의 사퇴 이후 1년 만에 새 지휘자로 요엘 레비<사진>를 임명했다는 소식이다. 레비는 루마니아 출신 유태계 지휘자로 애틀란타 심포니 등 미 메이저 오케스트라를 이끈 바 있다. 경력으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함신익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지휘자라 할 수 있다. KBS로서는 매우 잘 된 일이지만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명운을 건, 일대 모험적인 사안일 수도 있다. 왜냐면 요엘 레비와의 또다른 실패는 바로 KBS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KBS는 사실 함신익과 함께 궁합을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지난 10여년간 유난히도 지휘자 복이 없었던 KBS가 한국계의 함신익과 더불어 발전된 사운드를 들려줬다면, 한국계 지휘자와 한국계 오케스트라의 이미지가 동반 상승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KBS는 2005년 이후 상임지휘자가 공석인 오케스트라였다. KBS가 그랬듯, 지휘자의 위치란 쉽게 옮기거나 임명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휘자가 갈리면 단원도 갈리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이상적인 조율을 이루지 못할 경우… 즉, 오디션이란 명목으로 단원들의 목줄을 좌지우지하거나 지휘자가 올 때마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암암리에 텃세를 부리는 오케스트라에서 롱런할 수 있는 지휘자는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KBS 교향악단은 전신이 바로 국향… 즉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교향악단이었다. 60, 70년대의 어려웠던 시절, 대한민국의 음악계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서, 서울시향도 있었지만 80 년대 초까지만해도 서울시향은 국립교향악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요새는 사정이 달라져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하면 KBS보다는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을 꼽곤한다. KBS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KBS(국향)하면 남산의 국립극장이 떠오른다. 교통은 좀 불편했지만 남산자락, 소나무 향기 그득한 숲속 곳에서 서울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충족주던 곳이었다. 그러나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자리 탓 때문이었을까? 경복궁 맞은편, 명당자리에 떡 하게 새 둥지를 튼 세종 문화회관 시대가 열리면서 왠일인지 KBS의 명운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서울시향이 재빠르게 세종문화회관의 전속악단으로 종속되고 발빠른 행보를 지속하는 동안, 국립극장에 묶여 있던 국향은 지휘자, 연주홀, 연주활동 그 어느 것 하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2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중 무엇보다도 영향력있는 지휘자 영입에 실패한 것이 추락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특히 2005년 드미트리 키타옌코 이후 무려 5년동안이나 상임지휘자를 찾지 못하고 공석으로 비워둔 것은 그저 우연으로 돌리기에는(최소한 겉보기에는) 경영진의 부패, 내부 알력으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상식 밖의 사태였다.
아무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BS가 함신익 이후 1년만에 루마니아 태생 요엘 레비(63세)를 새 상임지휘자로 영입했다는 뉴스다.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건 명성있는 지휘자, 실력파를 갈망하지 않는 오케스트라는 없다. 그러나 신인들과 우승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천만금 연봉으로 선수들을 데려와 망하는 팀도 있다. 다행인 것은 레비의 경우 오케스트라와의 친화력이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지휘자라고 한다. 애틀란타 심포니에서 12년, 브뤼셀,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등에서 각각 7년씩 지휘 수명이 길었던 것도 믿음이 가게 하는 일면이다. 레비와 KBS 교향악단… 과연 찰떡 궁합을 이룰 수 있을까? 레비의 대단한 사운드 보다는 아픔만큼 성숙한, 국향(KBS)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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