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인 자살률’ 평균치보다 높아
▶ 질병의 고통·생활기능 상실·고립감 등이 원인 주변서 잦은 접촉으로 사회적 단절 막아주고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치료하고 도와줘야
모두가 놓치긴 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 당시에도 분명한 경고신호가 있었다. 그레시안 고키의 아버지 조셉은 심장판막 수술 후유증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 선친이 그랬듯 휠체어에 의지해 여생을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만만치 않았을 터이다. 여기에 백내장까지 겹치면서 그는 운전대를 놓아야 했다. 69세의 나이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늙은이로 전락한 셈이다. 기동성과 독립성을 잃은 후 그는 몹시 우울해 했다. 몸은 급속히 망가졌고, 입원치료를 필요로 할 정도의 심한 우울증이 엄습해 왔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전기경련 요법까지 받아야 했다. 인생의 마지막 수년간 그는 홀로 술독에 빠져 지냈다.
조셉이 일을 저지른 1986년, 그레시안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짚어내지 못했다.
“개인적인 문제에 관해 입을 다무는 것이 고키 가문의 오랜 전통”이었고 그레시안은 이 같은 ‘가문의 룰’에 철저한 셈이었다.
따라서 뉴저지의 어머니로부터 조셉이 자살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을 때 그녀가 받은 충격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두더지를 잡기 위해 집에 비치해 두었던 낡은 샷건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을 등질 당시 조셉은 여론조사 업체의 중역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 때 그의 나이 69세였다.
그레시안은 울먹이는 전화기 속의 어머니를 향해 “어떻게 자신의 삶을 그렇듯 학대할 수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대부분의 경우 심리적 웰빙은 인생 말년에 이르러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저점에 도달하는 중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에는 삶에 대한 심리적 만족감이 늘어난다는 것이 이른바 U형 곡선이론이다.
미 연방질병통제센터(CDC)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는 10만 명당 12.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살률은 나이가 들수록 가파르게 올라간다. 특히 조셉 고키처럼 백인 남성의 자살위험 가능성이 높다.
65세 이상 연령대의 평균 자살률은 10만 명당 14.9명으로 전체 연령층의 평균치보다 높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자살률이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한다.
자살에는 오명이 따른다. 그리고 바로 이 오명 때문에 자살을 가리는 다른 이름을 붙이려 애를 쓴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노인자살방지센터 창업주 겸 디렉터인 패트릭 아르보어 박사는 “사인이 약물과다 복용인 경우 사람들은 이를 ‘사고’라 부른다”고 말했다.
검사제도와 우울증 치료법 개선으로 최근 수십년간 노년기의 자살은 줄어들었으나 남성 자살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60세 이상 여성의 자살률이 줄어든 것과 대조적으로 남성의 자살률은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나이든 백인 남성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9명이고, 85세 이상의 남성의 경우에는 10만 명당 47명이다.
이처럼 노년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통계상으로 보면 노인은 젊은이에 비해 자살 시도율이 낮다. 그러나 자살 성공률은 오히려 높다. 총기와 같은 치명적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부분적 이유이다.
노년 자살을 연구한 로체스터대학 메디칼 센터의 예이츠 콘웰 박사는 “고령자에 비해 젊은이는 물리적 회복력이 훨씬 강한 반면 자살시도에 사용하는 도구는 노인층에 비해 대부분 덜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자살시도의 배경에는 십중팔구 우울증이 자리 잡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많은 노인들은 도움을 청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나이든 남성은 감정적 고통을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도록 조건화되었기 때문에 자꾸만 위장을 하려 든다.
연구원들은 정신질환 이외에 인생 말년의 자살을 부추기는 다른 위험요인들을 무더기로 밝혀냈다. 거기에는 신체적 질환과 고통, 일상생활 수행기능 상실, 사회적 단절과 가족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이 포함된다.
가족과의 사별, 은퇴, 고립 등과 같은 사회적 분리는 나이든 노인을 자살에 취약하게 만든다.
개중에는 자살을 정신질환의 결과라기보다 개인적 선택권 행사쯤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불치병에 걸렸건 아니건 인생의 즐거움과 의미를 상실한 개인에게 자살은 합당한 반응이 될 수 있을까?이 질문에 대해 콘웰 박사와 아르보어 박사는 “특정상황에서 충분한 논의와 숙고를 거친 결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사실 진단 가능한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 자살을 택하는 고령자의 비율은 대단히 낮다.
노년 자살은 질병과 우울증, 가까운 사람과의 작별 등 복합적 요인의 결과다. 만약 이들 가운데 하나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살고 싶다는 의지를 부추기는 쪽으로 저울추를 옮길 수 있다.
노인자살방지센터에서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은 매월 3,000건의 상담전화를 처리한다.
이들은 또 고립됐거나 자살위험이 높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매월 3,500건의 전화를 건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노인네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 끈이 모두 끊어졌을 때, 혹은 끊어졌다고 생각할 때 노인들의 좌절감은 깊어진다. 아르보어 박사의 지적대로 “삶은 관계에 의해 엮어진다.”노인 우울증의 증상을 알아채고 치료를 권하는 작업은 가족들의 몫으로 떨어진다.
우울증에 걸렸거나 희망을 잃은 친척이 자살을 강행하게 되면 가족은 슬픔뿐 아니라 죄책감과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온갖 질문에 시달려야 한다.
그레시안도 아버지가 자살한 뒤 수년간 분노 속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비겁하게 도망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는 자살 생존자들을 위한 지원그룹에 가입해 첫 8주를 보냈다. 그레시안은 지원그룹을 통해 이전보다 아버지를 훨씬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죽음을 택한 아버지보다 그의 좌절감을 읽어내지 못한 자신의 무심함에 화가 치민다.
아버지의 자살은 삶에 대한 그녀의 강력한 결의를 더욱 단단히 다져주었다. 설사 깜깜한 절망의 늪 속으로 빠져들더라도 “나는 결코 내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오기가 일었다.
올해 60세인 그레시안은 베이 지역에서 노인들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의 강사로 음악과 율동을 가르친다. 그녀는 70대와 80대, 그리고 90대 제자들과 어울리기를 즐긴다.
그레시안은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한결 표정이 밝아진 노인들을 대하는 게 낙이다. 그들이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내리도록 도우면서 그레시안은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죄책감을 조금씩 지워낸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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