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에는 ‘서복 전시관’이란 곳이 있다. 기원전 3세기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구하러 온 서복이 이곳을 다녀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서복은 3천명의 대선단을 이끌고 지금 한라산으로 불리는 영주산을 찾았다가 정방 폭포 바위에 ‘서불과지’(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을 새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서귀포라는 지명 자체가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시진핑도 2005년 여기 왔었다.
그러나 서복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불로초라는 것이 원래 있을 리 없고 그걸 구하지 못한채 가봐야 죽을 게 뻔한데 갔을 리가 없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전파해 야요이 청동기 문화의 시조가 됐다고 한다.
서복에게 속은 진시황은 분노하며 어의들에게 죽지 않는 약을 지어오라고 엄명을 내렸다. 어의들은 한약 재료로 쓰이던 수은이 잔뜩 든 환약을 바쳤고 진시황은 49세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긴 천하를 통일하고 절대 권력을 쥔 진시황의 입장에서는 불로장생만큼 간절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인간의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주 중국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 기간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의 푸틴이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주고받은 대화가 생중계됐다. 시진핑은 “예전엔 70세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지금은 70세도 어린아이”라고 말하자 푸틴은 “인간의 장기는 지속적으로 이식될 수 있다. 당신은 오래 살수록 젊어지고 불멸에 이를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시진핑은 “금세기 인간은 150세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1953년 6월생인 시진핑과 1952년 10월생인 푸틴은 모두 72세로 각각 중국과 러시아를 철권 통치하고 있으며 종신 집권이 유력시된다.
이들이 진시황과 한가지 다른 점은 그때와는 의학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점이다. 최근 실리콘 밸리의 투자가들이 가장 큰 관심을 쏟는 분야가 장수 의학 분야다. 수억에서 수천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투자가들 입장에서는 이를 성공시켜 버는 돈도 돈이지만 본인들부터 오래 살고 싶은 욕심이 푸틴이나 시진핑 못지 않을 것이다. 최근 월스트릿 저널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여년간 이들이 장수 산업에 투자한 돈은 50억 달러가 넘는다.
이들이 관심을 쏟는 대표적 분야는 세포 노화 방지다. 2022년 이 분야 최고액인 30억 달러를 투자받아 설립한 알토스도 세포를 다시 젊게 하는 기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포를 재프로그램해 젊은이처럼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2013년 3억5천만달러를 들여 만든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노화 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다 실패하고 최근 문을 닫았다.
장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천연 장수 동물에 관한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들이 ‘북극 고래’(bowhead whale)와 ‘육지 거북이’(tortoise) 등에 관한 것으로 이들은 200년 이상 산다.
동물들의 수명과 크기는 대체로 비례한다. 작은 동물들은 금방 큰 동물들의 먹이감이 되기 때문에 굳이 장수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덩치가 큰 코끼리, 갈라파고스 거북이, 북극 고래가 오래 사는 것은 이들을 잡아먹는 동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전자 입장에서 장수 기능을 갖추는 수고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벌거숭이 두더지 쥐’ (naked mole rat)다. 이 작은 쥐의 평균 수명은 30년으로 짧은 것 같지만 보통 쥐가 4년 사는 것과 비교하면 8배나 길다. 이 쥐는 땅속에서 주로 살기 때문에 일찍 잡아먹힐 일이 별로 없다. 따라서 장수하는 게 가치가 있다.
이 쥐 세포는 노화가 더디고 자기 치유 능력이 강하며 암세포 발생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쥐 세포에 들어 있는 리보솜은 단백질을 결합하는 역할을 하는데 다른 리보솜에 비해 정확도가 10배나 높다. 또 이 쥐 세포는 결함이 있는 단백질을 제거하는 프로테아솜 기능이 우월하다. 한마디로 산화 물질 등 해로운 외부 성분과 접촉하더라도 피해를 덜 받거나 치유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기능을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느냐가 수명을 늘릴 수 있느냐의 첩경인 셈이다.
이들 연구가 언제 성공할지, 장수 신약이 나오더라도 가격은 얼마가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보통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법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것은 채식 위주로 소식을 하고 골고루 먹으며 규칙적인 운동과 금연, 정기 검진을 받는 일이다. 불로초를 기다리기 전 이런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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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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