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환한 얼굴은 내게 힘이다. 엄마는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효자였던 아빠와 결혼해 3남 2녀를 키워낸 여든다섯의 백발의 할머니다.
달걀에 적셔, 커다란 마가린을 프라이팬에 쓱쓱 문질러 보드라운 빵을 굽기를 큰 식빵 한 줄하고도 반. 접시에 담긴 프렌치토스트를 식기도 전에 재빨리 입으로 쓩~ . 서울우유 500mL 3봉지도 거뜬히 해치우는 우리 남매. 엄마의 손놀림은 마술같이 빠르고, 얼굴엔 언제나 땀이 송송 맺혀 있었다.
매일 도시락 6~7개가 필요한 초, 중, 고등학생을 키웠던 엄마의 집안일에 비하면 지금의 내 일은 왕비와 공주급이다. 많은 일을 하시는 동안 엄마는 늘 밝게 웃는 얼굴을 하셨다. 요리사에 척척박사에 슈퍼우먼(내가 자라 5학년이 되었을 땐 원더우먼)이었고, 전등을 갈고 벽에 못질을 하고 무엇이든 고치는 맥가이버의 역할도 엄마의 몫이었다.
막내로 크면서 늘 좋은 것을 독차지하며 자라던 중, 오빠 언니의 외모(훤칠한 키와 수려한 얼굴)와는 다른 나는 항변한다. “엄마! 찌꺼기 젖을 먹고 커서 그래~ !” 재치 만점의 엄마는 “그러면 어째 그리 통통하고 건강하누?” “넌 언제나 예쁘고 귀여워~ 너 사랑은 언제나 네가 가지고 다니는 거야” 하셨다.
때때로 엄격하게 나를 몰아쳤던 오빠들도 이 말은 자주 해주었는데, 긴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되고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경기중학교를 재수해서 들어간 오빠의 합격소식에 하염없이 울던 엄마를 보며 갸우뚱한 5살 꼬마에게, 기뻐도 울 수 있음을 가르쳐 준 엄마.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격주마다 이어진 언니 오빠의 세 번의 결혼식 이후 오랜 시간을 앓아누웠던 엄마를 보며 엄마는 참 힘든 거구나 했다.
살면서 힘겨운 일을 만날 때면, 오뚝이보다 더 오뚝이 같은 철인 체력의 엄마를 기억한다. 내 안에 무한 긍정의 에너지를 쏘아주는 전화, 편지, 카톡도 아닌 따뜻한 엄마 얼굴. 내 기억 속에 또렷한 엄마의 모습을 오늘도 따라가야지. 아!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매일 아침 갓 구워낸 그 맛있는 토스트를 엄마도 드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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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사. 인생의 사분의 일을 산호세에서 살고 아들을 선물받기까지 함께 지내온 남편과 만난 지 30년. 4살 꼬마가 너무 예뻐서 실리콘밸리한국학교 유아반에서 13년을 살고 막강 뽀로로 체질을 자랑하며 노는 게 좋은 그런 이모, 선생님, 언니, 아줌마, 엄마, 여러분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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