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본다. 머리카락이 채 남지 않았다. 초췌해진 얼굴에 수심이 더해진다. 이미 눈물은 말라버렸지만 그는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했다. 그리곤 거울을 바라보며 “희망을 버려선 안 돼. 나는 이길 수 있어.”라고 다짐한다.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로리 리 씨(33). 아픈 이들을 구하고자 약사가 된 그녀의 꿈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6년 전이었다. UVA 병원에서 근무하던 당시 목 밑이 붓는 증세가 계속 됐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같은 병원 의사로 있던 연인은 검사를 권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결혼 후 이상 증세가 다시 심해졌다. 이번에는 정밀검사까지 받았다. 임파선 암의 일종이었다. 뜻하지 않은 암 선고에 신혼의 달콤함을 즐길 마음조차 빼앗겨 버렸다.
힘든 이민생활 속에서 남보다 두 배, 세 배 더 열심히 공부해 약학대학원을 마치고 병원에서도 인정받는 약사가 된 그였다.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자원봉사에 열심이고,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봉사자로 헌신해온 그였다. 그 아픈 와중에도 다른 암 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땀을 흘리던 따뜻한 마음의 그였다.
남편의 위로와 사랑이 큰 힘이 됐지만 그에게 닥친 시련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지,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야 할지 막막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항암치료를 두 차례나 받았다. 참고 견디면 이겨낼 것 같았는데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백혈구가 줄어들면서 감기만 걸려도 생명이 위협을 받을 정도로 악화됐다.
2년 전에는 다니던 직장도 사직했다. 담당 전문의는 골수 이식을 권했다. 꺼져 가는 생명에 마지막 희망이었다.
남편은 전미골수기증협회(Be the Match)’의 문을 두드렸다. 서광이 비췄다. 2명의 골수 일치자가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한 명은 고령자이고 또 한 명은 환자였다. 의사들은 18세에서 44세 이하여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골수기증협회에도 문의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가족들은 “같은 민족에서 70%의 일치자가 나올 확률이 많다”는 전문의의 말에 최후의 희망을 걸고 있다.
“미국 내에는 1만 명의 한인이 골수기증협회에 등록돼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골수기증협회에 등록해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있어 로리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행렬에 꼭 동참해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로리 씨도 기도와 간구로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전미골수기증협회(Be the Match)에 등록하려면 www.Bethematch.org에 들어가 join하면 웹 사이트가 나오고 등록하면 된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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