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동물 서식지 급속 축소… 최근 사냥에 대한 인식 냉랭
▶ “평생 짜릿한 경험 잊지 못해”… ‘돈 되는한’ 밀렵도 계속될듯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이 입원한 병원 앞에서 동물보호론 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카를로스 국왕은 2012년 아프리카 보츠와나로 코끼리 사냥을 갔다가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지도 추락을 겪은 카를로스 국왕은 2014년 왕좌에서 물러났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이 익스플로러스 클럽에 기증한 사자 머리 박제. 사냥광이었던 루즈벨트는 1908년에서 1910년 사이에 동아프리카에서 직접 잡은 사자의 머리를 박제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 짐바브웨 ‘국민 사자’ 세실의 죽음으로 논란 가열
미합중국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자타가 공인하는 ‘사냥광’이었다. 1909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마자 그는 ‘스미스소니언 사냥 원정대’를 이끌고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1910년까지 이어진 아프리카 원정을 통해 그와 그의 아들 커밋은 11마리의 코끼리와 17마리의 사자, 20마리의 코뿔소를 비롯, 수백 마리의 야생동물을 닥치는 대로 ‘사살’했다. 당시 경험담을 기술한 ‘아프리칸 게임 트레일스’(African Game Trails)라는 책에서 루즈벨트는 “사냥감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것은 다른 어떤 동물학대와 마찬가지로 역겨운 야만적행위이지만, 그렇다고 ‘게임의 룰’을 지키는 사냥꾼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정신의 건전함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머리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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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는 그 누구보다 피비린내 나는 ‘헌팅파티’를 즐겼지만 대통령 재임 때에는 수렵허용 지역 확대와 야생동물 보호구역 보존 사이에서 행복한 중용을 취하려 노력했던 인물이다.
최근 들어 사냥에 대한 대중의 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냉랭하다. 무분별한 밀렵 확산과 토지개발에 따른 야생동물 서식지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수렵 애호가들을 바라보는 눈에도 얼음장이 덮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인 치과의사인 월터 파머가 지난달 짐바브웨 왕기국립공원에 살고 있던 ‘국민 사자’ 세실을 공원 밖으로 유인해 무참히 도륙한 사건이 터지자 무분별한 밀렵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가 용암처럼 터져나왔다.
검은 색의 갈기가 특징인 수사자 세실은 해마다 수만명의 관광객을 왕기국립공원으로 끌어들이던 ‘애니멀 스타’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냥이 취미인 월터는 중개인들에게 5만달러를 내고 미끼를 이용해 세실을 국립공원 밖으로 유인했다. 공원 내에서는 사냥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네소타 출신인 월터는 공원 밖으로 나온 세실에게 석궁을 쏘아 부상을 입힌 후 피를 흘리며 도주하는 그를 40시간 동안 쫓아다닌 끝에 사살했다. 월터는 짐바브웨 ‘국민 사자’의 머리를 잘라 박제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사냥꾼들은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팔로를 ‘빅 5’라 부른다. 그리고 빅 5의 머리는 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트로피다.
해마다 아프리카 수렵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선 야생동물을 해치는데 대한 죄책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수렵이야말로 야생동물 보존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합법적인 스포츠라고 굳게 믿는다. 아프리카에서 사냥을하려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바로 이렇게 모인 자금이 야생동물 보호구역 유지비로 사용된다는 얘기다.
남아공 전문수렵인협회의 최고경영자 아드리 키츠호프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사냥꾼은 피에 굶주린 킬러가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키츠호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수렵 목적으로 남아공을 찾은 외국인 사냥꾼은 약 7,600명으로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미국인이다.
이들 중 초짜들은 대부분 사냥 전문 사이트를 보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사냥여행 전문 사이트는 그 수도 많을 뿐 아니라 꾼들의 킬러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만큼 콘텐츠 역시 깔끔하게 짜여 있다.
한 사이트에 따르면 남아공 파라라 야생동물 구역을 도는 7일 간의 사파리 여행을 떠나려면 5,000여달러가 필요하다. 호객꾼들은 사파리 관광여행 도중 방문객들은 큼직한 영양과 흑 멧돼지 등을 사냥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짐바브웨에 기반을 둔 마틴 피터스 사파리는 공식 웹사이트에 “우리는 윤리적이고, 룰을 지키는 공정한 사파리”라고 운을 뗀 뒤 표범사냥을 할 때 느끼는 긴장감을 상세히 묘사해 놓았다.
“마치 캄캄한 밤처럼 주위는 적막하다. 짙은 나무 그늘 아래 몸을 숨긴 채 불과 60야드 앞에 있는 목표물을 주시한다. 결정적인 기회를 잡을 때까지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여선 안 된다. 철저하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하더라도 끝내 기회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게 표범 사냥이다.”
사냥은 값비싼 스포츠다.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려면 수만달러의 비용이 필요하다. 총질 좀 한다고 해서 아무나 사자를 쏠 수 있는게 아니다. 사자를 잡으려면 간도 커야 하지만 무엇보다 주머니가 두둑해야 한다.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루즈벨트 뺨치는 수렵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의 금융위기가 정점에 도달했던 2012년, 그는 보츠와나로 코끼리 사냥을 떠났다. 수행원을 줄줄이 대동한 초호화판 헌팅파티에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들어갔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사냥여행을 계기로 카를로스 국왕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코끼리를 잡으려다 민심을 잃은 셈이다. 사파리 도중 부상을 입고 귀국한 그는 2014년 여론의 압박에 밀려 왕위를 내놓았다.
왕세자에게 왕좌를 물려준 그는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던 2년 전의 수렵여행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밀렵이 끊이지 않는 주된 이유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시아의 상아 수요 때문이다.
세계 최대 코뿔소 서식지가 있는 남아프리카로 전문 밀렵꾼들이 꼬이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중국인들은 코뿔소의 뿔에 강력한 최음 성분이 있다고 믿는다. 그게 무엇이건 일단 정력제나 최음제로 소문이 나면 뜨거운 불기둥처럼 수요가 치솟는다. 시장에서 수요는 곧 돈이다.
그러나 돈이 아니라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을 위해 아프리카를 찾는 샤낭꾼들도 적지 않다.
엽총자살로 인생을 끝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사후 출간된 ‘트루 엣 퍼스트 라이트’ (True at First Light)라는 책에서 “야생사자의 포효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사가 제작한 영화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사자의 울부짖음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는 얘기다.
“처음으로 야생사자의 포효를 들으면 음낭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아랫도리에서 시작된 오싹한 소름기는 곧이어 몸 전체로 퍼져간다.”
헤밍웨이가 털어놓은 경험담이다. 어쩌면 인간의 마음속엔 원초적인 공포와 마주하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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