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판적 시각 높은 점수”에 보수진영 ‘편향적 해석’반발
▶ 텍사스주 사회과정 개정, 노예를 노동자로 표현, 물의 출판사 ‘강제 이주’로 수정

역사 교과서 논란이 일어온 텍사스주의 교육위원회 앞에서 시위대들이 역사 왜곡 항의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에서 논쟁거리다. 최근 미국도 사회 교과서 왜곡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고 있다.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는 텍사스주 교육위원회가 자유시장 경제의 장점을 포함해 친 공화당적 시각을 사회과 교과서에 강화하기로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역사 교과서 논쟁과 유사해 관심을 끌고 있다.
◇노예제를 ‘무급 노동자’로
지난 9월 텍사스주 휴스턴의 펄랜드 고교에 다니는 신입생 코비 버렌(15)은 수업시간에 세계지리 교과서를 펼쳐보다 깜짝 놀랐다. 교과서 126페이지, 미국 지도가 그려진 한 섹션에 달린 이민에 대한 부연설명 때문이었다. 이 교과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노예무역에 대해 설명하면서 1500년대부터 1800년대 사이 아프리카인들이 미국의 농장에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 이곳에 왔다고 적혀 있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인들에 대한 묘사가 흑인과 차별적인 것도 코비와 그의 어머니 로니 딘 버렌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 교과서 또 다른 페이지에는 유럽인들은 무급 고용계약제(indentured servants)로 미국으로 왔다고 적혀 있었던 것.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 역시 무급으로 일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교과서에서는 마치 흑인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은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딘 버렌은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영상물을 올렸고, 이는 널리 공유돼 200만건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고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보수적 수정교과서 논란
2010년 텍사스주의 교육위원회는 사회 교과과정 지침을 자본주의의 장점과 공화당에 친화적인 정치이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대폭 개정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교과서가 올해 가을 학기부터 공립학교에서 일제히 사용되고 있다. 흑인 노예를 ‘노동자’라고 표기한 문제의 세계지리 교과서 역시 이번 가을학기부터 적용된 새 교과서였다.
수정된 역사 교과서가 내용뿐만 아니라 기술방법에 있어서까지 논점을 흐리고 사실을 왜곡하는데 일조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달 23일 다트머스대 문장론 강사 엘렌 브레슬러 록모어는 뉴욕타임스에 새 교과서의 기술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텍사스주 공립학교 학생 500만명이 사용하기 시작한 새 교과서들의 일부가 “단어의 선택을 통해서 뿐 아니라 문법을 통해서도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문장을 어떻게 구성하고, 무엇으로 문장의 주어를 삼을 것이며, 동사는 능동태로 할 것이냐 수동태로 할 것이냐 하는 것들을 결정하는 방식에 따라 ‘노예제가 전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교과서를 출판한 맥그로우 힐은 자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성명을 게시해 노예무역에 대한 설명을 미국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고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인쇄된 배포된 책에는 수정된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붙여 해당 설명을 덮기로 했다.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데이빗 레빈 맥그로우 힐 교육의 대표는 이 설명을 ‘실수’라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교과서 검수자들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ㆍ외부 다수 전문가들이 검토했고, 대중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게 만들었는데, 당시 문제가 된 설명에 대해서는 아무도 우려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800페이지에 달하는 교과서 전체를 보면 노예제도의 문제를 왜곡하지 않으며 흑인을 납치해 노예로 삼은 역사에 대해서 수십개 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명했다.
◇출판시장에 정부 입김
텍사스의 수정 교과서는 일찍이 왜곡논란을 예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월 ‘어떻게 텍사스가 남북전쟁 역사를 덧칠하는가’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텍사스의 수정된 교과서가 텍사스 학생뿐만 아니라 전국의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정된 텍사스의 사회 교과에서는 미국의 헌법체제가 성경을 기반으로 완성됐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모세와 같은 성경의 인물을 비중 있게 다루도록 했다. 특히 논란이 됐던 부분은 남북전쟁과 관련된 것으로, 남북전쟁의 원인이 크게 지방주의, 주들의 권리, 노예제로 나뉘는데 노예제보다는 지방주의와 주의 권리가 전쟁 발발에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텍사스 교육위원회는 2010년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면서 노예제도를 부수적인 문제로 가르친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WP는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했을 때 노예제는 부수적인 문제가 아닌 가장 핵심문제였다며 어떠한 진지한 학자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주인 텍사스에서 주 정부는 교과서의 가장 큰 구매자다. 그러다 보니 일선학교에서 교육위원회가 사전 승인하지 않은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정부가 제안한 교과서를 구입하고 있다. 때문에 출판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출판업체들은 정부 기준에서 벗어나는 교과서를 출판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비판적 역사인식 교육 이슈화
텍사스 역사 교과서 수정뿐만 아니라 역사 교육과 관련된 갈등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비영리단체인 칼리지보드가 SAT 시행이나 AP의 평가기준을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높은 점수를 주는 방향으로 새롭게 수정하자, 일부 보수성향 학자단체에서 역사 교육에 애국주의적 요소가 약해졌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칼리지보드가 “미국의 지도력을 지나치게 저평가하는 편향된 미국 역사 해석을 유도한다”고 반발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역시 지난 8월 같은 논리로 역사과목 AP 평가기준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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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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