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광복회에서는 매년 해외동포재단의 후원으로 한인 1세 및 1.5세, 2세들을 대상으로 무료 서재필 기념관 방문행사를 갖는다. 일제강점기 시절 많은 애국지사, 독립투사들이 계셨지만 자체기념관을 해외에 가진 분은 서재필 기념관 밖에 없어 다른 애국지사 숭모회에서는 매우 부러워하고 있다. 이 기념관은 박사님이 마지막 25년의 여생을 보낸 곳이며 또한 서거하신 곳이기 때문에 많은 의미와 역사적 가치 또한 크다.
서 박사님은 우리 한인들과 같이 이곳에 이민(망명)오셔서 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성공하시고 고초도 많이 겪으셨다. 1864년에 출생(지난해 탄생 150주년), 18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20세에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개혁을 위한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실패, 일본으로 도주 후 21세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우리와 같은 고난의 미국이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32세에 조선정부의 부름을 받아 11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 민중교육과 신문제작(독립신문), 민중계몽운동에 주력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한다. 또 독립문을 세우고 청년, 민중들에게 대한제국, 러시아, 일본정부의 부당함을 성토하다가 다시 고국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되고 미군정이 시작되자 군정장관 하지중장의 최고고문 겸 과도정부특별의정관으로 고국을 다시 찾아 해방 후의 고국 안정과 민족통일을 위해 노력한다. 1951년 87세의 고령으로 고국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의 소식을 접하고 눈물로 조국을 걱정하시며 생을 마감하셨다.
박사님을 생각하면 그분의 나라사랑, 민족사랑, 독립자강의 고귀한 정신과 열정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이해하고 돌이켜보는 데는 직접 서재필기념관을 방문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을 것 같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 결실의 가을에 한 거인의 위대한 정신과 생애를 둘러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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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도 / 대한민국 광복회 뉴욕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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