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호(33)의 달콤한 목소리가 삶의 묵은 때를 빨래하듯 씻겨냈다.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1관 뮤지컬 `빨래'에서 벌어진 마법 같은 순간이다. 풍성하고 고급스런 홍광호의 목소리는 `꿀성대'로 통한다. 귀가 호강하는 동시에 위로를 받는다.
홍광호는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노트르담 드 파리' `데스노트' 등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을 통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영국 런던에서 개막한 `미스 사이공' 25주년 기념 뉴 프로덕션의 베트남장교 `투이' 역을 맡아 `2014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 조연 남자배우상, `제15회 왓츠 온 스테이지' 최고조연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
`빨래'는 250석짜리 소극장 창작뮤지컬이다. 4월 공연 티켓 13회차가 오픈 동시에 2분, 3월 공연 티켓 12회차가 3분 만에 매진됐다. 평일 낮 공연임에도 이날 역시 객석은 가득 찼다. 대극장에서 공연 전체를 서서히 덮어가며 웅장하게 녹아냈던 홍광호의 목소리는 소극장에서 서서히 번져갔다.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솔롱고와 서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나영' 등 서민들의 팍팍한 인생살이는 관객들에게 저릿저릿 다가온다.
홍광호의 연기력은 한층 탄탄해져있었다. 특히 서점에서 불법해고를 당한 선배를 위해 사장인 `빵'에게 대든 뒤 술을 먹고 취한 나영이 솔롱고의 집주인과 싸움이 붙었을 때가 정점이다. 나영이를 보호하면서 대신 맞는 모습에 객석 곳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능수능란함도 늘었다. 2막 초반 일종의 보너스 장면으로 홍광호가 베스트셀러 소설
`빨래하는 남자'의 작가로 변해, 나영이가 일하는 서점에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선글라스를 낀 채 건들거리며 사인해주는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망가진 모습에서도 홍광호는 품위를 잃지 않는 태연함을 보였다.
홍광호는 이처럼 존재감을 발휘했지만 튀지 않는 묘를 발휘한다. `빨래'는 앙상블의 뮤지컬이다. 솔롱고와 나영 외에 반신불수 딸을 돌보는 주인할매, 동대문에서 여자 옷을 파는 과부 등 서민들이 어우러지며 위로를 받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빨래'를 함께 하며 쌓인 때와 그 속의 아픔까지 씻어버린다.
솔로 넘버에서 오롯이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지만 앙상블에서는 다른 7명의 배우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다. 홍광호는 이처럼 능수능란하게 힘을 조절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이를 통해 새삼 `빨래'가 좋은 작품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그가 이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다. 홍광호가 '홍롱고'인 이유다.
지난해 6월 10주년 특별공연을 선보인 `빨래'는 11년차에 들어서도 이 시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 감성과 정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스타배우와 작은 소극장 뮤지컬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범사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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