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는 각자의 꽃말과 의미가 있다. 장미 하나에도 품종에 따라 모양, 크기, 색깔이 다르고 이름을 다 외우기도 버겁다. 그런 내게 꽃말과 꽃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몇 달 전 아이들의 졸업식에 줄 꽃다발을 샀다. 아이들에게 건네었던 꽃다발은, 사진 몇 장 이후 다시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쌍둥이인 아이들은 졸업파티를 한다며 친구들과 유유히 사라진 뒤였기에, 머쓱하게도 꽃다발을 두 개나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포장을 풀자 꽤 많은 종류의 꽃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집안에 있던 꽃병과 빈 유리병을 꺼내어 꽃꽂이를 시작했다. 거의 일률적이던 길이를 조절하고, 싱싱하지 않은 잎들을 잘라주고 몸을 가볍게 해주니, 꽃이 가지 끝에서 한결 돋보이며 살아나는 듯 했다.
그리고 꽃을 산 지 5주가 지났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들어진 꽃들을 꺼내고, 시들지 않은 꽃들을 화병에 담기를 반복하며, 몇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꽃에도 그 나름의 역할이 있다. 아름다운 색과 향기 있는 꽃이 있는가 하면, 별 향기를 느낄 수 없는 꽃도 있으며, 봉우리일 때는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다가, 피어나며 화병 전체를 장악하는 여왕과 같은 꽃이 있었다.
또 처음부터 끝까지 큰 존재감은 없으나 빨리 시들지도 않으며, 다른 꽃들과 조화를 이뤄가며 오래도록 머무르는 꽃이 있었다.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시들었던 꽃은 불같은 사랑을 의미하는 장미, 다음은 릴리였다. 릴리는 먼저 피었던 꽃이 질 즈음 다른 대에서 나온 또 다른 봉우리에서 큰 꽃을 피웠다. 꽃말에서와 같이 마치 하나의 웅장함이 지난 후 또 다른 웅장함이 있다는 듯 말이다.
다음은 우정을 뜻하는 알스트로메리아와 스승과 부모님께 존경으로 드리던 카네이션으로, 그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많은 꽃들이 시들어가는 동안에도 기억을 의미하는 갯질경이 꽃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꽃병에 남아 있는 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화였다.
국화꽃에 숨겨진 여러 의미 중에 영속적인 삶과 재탄생, 가족 간의 사랑 이외에도 진실과 감사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세상에서는 다시 만나 감사를 전할 수 없는 분에게 드리는 꽃이 국화이기도 하다. 이 작은 꽃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옴이다.
국화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창가에 남아 진실함에 대해 그리고 감사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건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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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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