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 참전용사 엘리스 일병 유해, 고향 품으로
▶ VA 로녹 출신… 해병 1사단 소속, 장진호 전투서 전사

22살에 한국전에 참전한 엘리스 일병(오른쪽). <사진=국방부 POW/MIA>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수많은 무명용사 가운데 한 명이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버지니아 로녹 출신 헨리 에드워드 엘리스 일병은 이제 더 이상 실종자가 아닌 전사자로서 가족들의 곁에 묻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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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의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엘리스 일병은 해병대 1사단 소속으로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혹한기 전투 가운데 하나인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함경남도 장진호(고토리)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미 해병대 1사단 1만5천여명이 열배에 달하는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 철수한 전투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미군 4,500여명이 전사하고 7,500명이 부상을 당했으나 이 전투로 인해 10만여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무사히 철수하는 ‘흥남 철수 작전’이 가능할 수 있었다.
NBC방송은 11일, 엘리스 일병의 조카 트루디 닐리 씨와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그녀는 삼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며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오빠를 그리워하는 어머니로부터 삼촌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추운 겨울, 적군에 포위돼 힘겹게 싸우다 전사한 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는 “22살의 청년이 감당해야 했던 당시의 막막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끔찍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삼촌인 엘리스 일병은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 그동안 실종자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글로리 작전’을 통해 북미간 전사자 유해교환이 이루어지면서 엘리스 일병의 가족들도 신분확인을 요청하게 됐다. 10여년전 워싱턴 DC를 방문해 DNA 샘플을 제출하고 기다리던 가운데 언제나 환하게 웃던 다정했던 오빠를 그리워하던 닐리 씨의 어머니는 4년 전 사망했다. 그렇게 7명의 형제자매는 70년의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세상을 떠났고 조카인 그녀가 삼촌의 유해를 확인하게 됐다.
지난 7일 국방부로부터 감식결과를 전달받은 그녀는 “엄마가 천국에서 내려다보며 웃고 계실 것”이라며 “믿을 수 없는 70년의 기다림이 끝났다”고 말했다.
한국전 참전용사 엘리스 일병의 유해는 버지니아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고향, 노스 캐롤라이나 솔즈베리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1943년 15살의 나이에 징집돼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그는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후에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다시 입대했다.
한국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7,500여명의 미군 무명용사들, 그러나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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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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