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시리즈/ 이민 120주년 태평양 요트횡단 원정대 ‘항해일지’

무풍지대를 벗어나자 이번에는 폭풍 수준의 바람이 불어 집채만한 파도가 요트를 사납게 덮쳤다. 왼쪽 작은 사진은 거센 바람으로 유일한 동력원이었던 풍력발전기 날개가 부러진 모습. [박상희 대원 촬영]
3월21일 화요일
어제부터 동쪽에서 불어오는 뒷바람에 배가 많이 흔들렸다. 마틴 곽 후원회장으로부터 최고 25노트의 강풍이 불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아니다 다를까. 오후부터 바다가 사나워지더니 집채만한 파도가 우측에서 밀려 온다. 무풍지대를 벗어나자 마자 험한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단독으로 태평양을 횡단했던 ‘전설’ 강동석씨가 우리 배보다 더 작은 요트를 타고 이 거친 바다를 어떻게 건넜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메인 돛을 가장 낮게 내렸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 때문에 배가 좌우로 기울고 앞뒤로 요동치고 있다. 대원들에게 구명복과 하네스(harness) 등 안전 장비를 착용하도록 하고 야간 불침번도 2명을 세웠다. 밤새 요트는 급행열차처럼 달려간다.
3월22일
파도와 바람이 그칠 줄 모른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배터리가 거의 소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믿었던 풍력발전기가 충전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배터리에 직접 연결하니 조금씩 충전되기 시작했다.
거친 파도와 강한 바람에도 배가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는 기계식 항법장치 윈드베인(wind vane)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애마와 같은 이그나텔라가 험한 기상 상황에서도 든든하게 버텨줘 큰 힘이 된다. 역시 대양 항해용 요트의 진가가 발휘되고 있다.
3월23일
흔들리는 요트의 좁은 공간에서 기상상황에 따라 돛을 폈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항해 경험이 부족한 대원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나 역시 내내 긴장해야 하고 밤에도 쉽게 잠을 자지 못해 많이 피곤하다.
며칠 동안 강풍에 시달리다 보니 식사를 제대로 준비하기 힘들다. 지친 대원들은 입맛마저 잃어 버린 모양이다. 계속해서 헤드 돛을 접었다 펴다 보니 돛에 상처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헤드 돛을 내리고 보조 돛인 스테이 돛을 올렸다. 역시 태평양은 태평양이다. 바람과 파도 스케일이 근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폭풍 수준인 40~50노트 속도의 뒷바람이 며칠동안 계속 불고 있다.
3월24일
오후 4시. 파도가 크게 일고 바람이 세서 뒷바람을 항로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목적지까지 직선 항해를 포기하고 북서로 올라갔다 남서로 내려가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 나갔다. 윈드 베인의 나사가 빠져 덜렁거렸다. 이 상황에서 대원들과 함께 무사히 1차 기항지인 호놀롤루에 도착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이 항해를 마무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한다.
3월25일
죽으로 아침을 때우고 있는 순간 심한 진동이 배 전체에 울려 왔다. 풍력발전기 날개가 결국 망가지고 만 것이다. 태양광 발전기가 제대로 작동을 못하는 상황에서 풍력 발전기 마저 없으면 전기를 만들 방법이 없다. 디젤 연료도 10갤런 남짓 남았다.
결국 부족한 연료를 채우기 위해 현재 위치에서 870여마일 떨어진 빅아일랜드 동쪽 힐로로 가기로 했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냉장고와 냉동고를 껐다.
3월26일
배터리가 14% 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연료와 전기로 힐로까지 5일을 버텨야 한다. 그 와중에 셀폰과 안경을 바다에 빠트렸다. 설상가상이다.
3월27일 월요일
힐로로 가기 위해 북위 19도 선까지 부지런히 남서로 내려가고 있다. 개솔린으로 작동하는 포터블 발전기를 돌렸다. 디젤을 쓰지 않고도 얼마간 충전이 가능할 것 같다. 다행히 오늘부터 기상상황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힐로까지 남은 거리는 615마일이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대원들에게 마지막 힘을 내자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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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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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간 최선을다 할때 내일은 별로 걱정 아니해도 될 일입니다...모두의건당을 아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