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큰 재미는 딸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다. 스케치북, 색종이, A4용지 가리지 않고 그리는데 단순했던 끄적거림은 점점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몇 달 전 몬스터를 좋아하는 딸 이야기가 담긴 동화를 써보았고 그림까지 직접 그려보고 싶어 아이패드를 샀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힘겹게 그려본 몬스터들은 딸의 그림만도 못했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엄마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딸은 How to Draw라며 그리기 교안을 만들어 주었다. 따라 그려보니 정말 도움이 돼 웃음이 나왔다.
화가인 와이프에게 당신은 왜 그림을 그리냐는 질문을 했다는 배우 류승범님의 인터뷰 내용이 있다. 그녀는 ‘어릴 적 우리는 모두 화가였어. 세상 어린이들을 봐. 모두가 그림을 그리고 있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도 어린이였을 땐 막힘없이 표현했을까? 엄마로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아이의 표현력을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정답부터 찾도록 교육받은 나는 쉽게 지워지는 애플펜슬의 터치 하나도 조심스럽고 나의 작업에 확신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해 보고싶은 일이 있어도 맞는 방향인지 결과부터 따지고 막상 도전하지는 못했다. 사실은 ‘왜 그렇게 했니’ ‘넌 부족해’같은 지적과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든 잘 풀리기 전에 한 번은 잘못될 것이다. 괜찮다. 사실 그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 읽은 ‘자신의 존재를 사과하지 말 것’ 책의 한 구절이다. 자폐스팩트럼장애를 가진 과학자인 저자는 두려움이란 감정을 머신러닝 사고와 양자물리학, 프리즘에 빗대 흥미롭게 표현했다.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는 것 혹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약점 아닌 강점이며 우리는 불확실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부분이 특히 위안이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을 이해하려 처절하게 노력한 저자가 과학으로 승화시킨 문장들은 하나하나 마치 예술 같았다. 나의 소소한 일상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며 불확실성을 원동력 삼아 나아가고 싶어졌다.
오늘도 사랑스러운 나의 딸은 아이패드를 열고 브러시를 바꿔가며 신중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국에 있는 이모와 줌으로 만나 드로잉배틀을 하기도 한다. 딸은 앞으로 그림 열정이 더 깊어질 수도 있고 음악, 패션, 쇼츠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성장할 것이다. 무슨 공부를 하고 어떤 길을 가든 자신만의 예술활동, 마음을 표현하는 창작활동은 놓지 않았으면 한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는 나에게 딸이 ‘엄마, 작가야?’라고 묻는다. 집 인테리어를 바꿔보는 나를 보며 ‘스타일 디자이너 같아’라고도 한다. 딸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아티스트란다. 풍성하게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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