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만나는 대부분 내담자 분들은 화를 표현하려 하면 어김없이 빨간색을 먼저 집어 든다. 색들 중 파장이 가장 긴 빨강은 피나 불처럼 강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 같기는 하다.
오래전 필자는 아트 테라피 워크샵에서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던 붉은 색을 도전해 보려는데 그 튀는 색이 그렇게 꼴보기 싫을 수 가 없었다. 그때의 부정적인 감정을 일부러 피하지 않고 한참 화풀이 삼아 작업을 하는데 문득 뭔가가 떠오른다. 빨간 꽃무늬 원피스.
고등학교 시절, 엄마는 장을 보고 오실 때마다 홈웨어 원피스를 하나 둘씩 사들고 오셨었다.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꽃들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며 입어보기를 수차례 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낭비라는 생각과 함께 또 다른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 당시 우울하고 고민이 많았던 사춘기를 한참 보내고 있었던 나의 걱정과 회색의 어두움의 이유는 한번도 묻지 않으시고 당신은 이쁜게 좋다는 엄마가 이기적으로 보였고 어쩌면 그것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빨간색과 반시간 가량 씨름하면 할수록 그동안 뻔하게 보였던 색의 다양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의, 전쟁같은 시간이 보이다가도, 이게 사는거지 뭐 별거 있나 받아들임의 농익은 느낌까지…혹독한 시집살이 십년과 남편의 병 간호 십년 후 모처럼 맞이했던 그 잠깐의 봄날 같았던 그녀의 시간과 색들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다니….
보기 싫은 색이 없어지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 것일까? 아니 그보다 늘 회색이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내면 안에서 빨강은 물론 수많은 다양한 색들을 결국 찾게 되어서 인 것 같다.
화가 턱까지 차 오를 때, ‘어차피 세상사 누구나 겪는 일. 무조건 참자.’ 하지 않으면 좋겠다. 대충 무시하고 살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에 더 많은 비밀과 자신만의 색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담자들이 뱉어내는 ‘화‘라는 감정 하나에도 같은 색이 없음에 필자는 놀라고, 볼때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감상하듯이 늘 흥분된다. 그것들을 함께 느끼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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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 (S_PACE 스페이스 미술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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