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7살 되기 일주일 전에 고국을 떠나왔고, 긴 시간을 돌아 프랑스인 남편을 만났다. 그런데 둘 다 K-드라마 팬이더니 한국여행을 하고 왔다. 마침 추석이라 삶의 뿌리인 고향의 외삼촌 집에서, 몇 십 년 만에 제대로 한가위를 보냈다고 좋아했다.
매일 보내는 카톡사진을 보며 숙소인 용산의 호텔을 거점으로 이태원, 홍대 등 서울 각처로 바쁘게 순력(巡歷)하는 걸 알았다. 세계유산지구인 종묘도 갔는데, 630년 역사인 신전의 중후함과 고적한 분위기에 은근히 압도됐던 모양이었다.
종묘는 내 모교 근처여서 여고시절의 추억과 많이 겹쳐지는 곳을 딸이 갔으니, 참 세월이 무상하다. 또 외국인 관광버스로 DMZ에 갔는데, 사진으론 내 기억속의 임진각이 아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북녘 땅을 코앞에서 내려다보는데 상징적 의미가 실감나 속상했단다.
가장 추억에 남는 일로 접근성 좋았던 북한산국립공원 등반을 꼽았다. 하필 비가와 몇 번이나 중도포기하려다 기어코 끝까지 올라갔단다. 우비를 입고 찍은 정상사진을 보니, 고 2때 친구들과 처음 등산 후, 산세와 수려한 경치에 반해 두 번 더 올랐던 백운대다.
영봉의 반석과 주위 풍광이 옛 모습 그대로라 반갑다. 그 다음 등정으론 렌트카로 제주도 비경 일주였단다. 낚시로 잡는다는 은갈치가 통째로 나오고 흑돼지 요리도 음미했다며 사위는 엄지척이다.
해녀들을 보러갔는데 우중에 파도까지 겁나게 높아 물질금지더란다. 해서 배타고 우도로 갔는데 온통 땅콩! 땅콩! 이더라나. (먹어보니 우도 땅콩이 알은 잘아도 아주 고소하다) 제주도엔 세 번 가봤지만, 우도는 이름대로 소가 누워있는 모양의 섬이란 것만 알았다.
1990년, 당시 초등생, 중학생이던 아들과 딸을 데리고 조국을 방문했었다. 절약할 겸, 한국학생들 실태도 알게 할 겸, 연일 혹서에도 만원버스와 지하철로만 이동했다. 한국의 역사와 속살을 보여주고자 경복궁박물관, 재래시장 등을 데리고 다녔다.
묵묵히 잘 따라다녔던 딸이 케네디공항에 내리자 첫 마디가 “아! 난 미국이 좋아! 한국엔 다신 안가!”였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내 시행착오를 깨닫곤 애들에게 많이 미안했었다. 7년만의 첫 고향 나들이인데, 가급적 즐겁고 편하게 좋은 면만 보여줬어야 했다. 괜히 실상을 보여준다고 고생만 시켜 모국의 인상을 회색빛으로 칠해준 거니까.
그랬던 애가 이번엔 서울이 깨끗한데다 택시비 싸고 사람들도 친절해 한국에서 살고 싶단다. 나도 가본 지 20년이나 돼 잘 모르지만 그동안 관광산업활성화에다 k-컬처 등 각 분야가 급격한 발전을 이룬 증거겠다. 금상첨화론 고향땅에 친구가 있을 리 없는 딸이 에드워드 리 셰프랑 해후하고, 사위는 오래 전에 프랑스유학파였던 한국인 친구랑 회포를 나눈 것!
사위는 여행 중 하이라이트가 K-푸드였다는 한식 파다. 떠나는 날, 호텔조식사진 아래 ‘한국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란 메시지와 눈물 이모티콘을 보냈을 정도다. 다녀본 나라 중 베스트가 어디냐니까 코리아란다. 딸에겐 삼사년 전에 갔던 그리스와 아이슬란드보다 좋았냐니까 “그럼!”하면서 당연하단 웃음이고.
비로소 안도감과 뿌듯함이 차오른다. 딸의 가슴에 무채색으로 각인됐던 모국의 잔상이 자긍심으로 예쁘게 덧칠, 유채색유화로 재탄생된 거니까. 나 역시도 딸의 여정에 편승, ‘절반의 본향여행’임에도 고국의 높아진 위상이 느껴져 자랑스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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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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