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고금리, 고용 불안, 주거비 폭등, 국제 갈등과 기후 위기까지. 수많은 압박 요인이 한꺼번에 덮치면서 우리는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미래 자체가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에 정치 양극화와 혐오, 가짜뉴스까지 뒤섞이며 사회적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생활비는 치솟는데 임금은 제자리이고, AI로 인해 일자리는 불안정하다. 한번 실직하면 안정된 일자리를 다시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집값과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솟는데 공공주택과 주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결국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재난이 잦아지는 기후 위기 속에서 가난한 이들은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정치는 문제 해결 대신 진영 싸움에 매몰되며 삶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경제가 나빠지면 모두가 힘들다는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부유층과 상위 중산층에게 위기는 '얼마나 덜 잃을 것인가'의 문제다. 자산 가치가 줄거나 수익이 감소해도, 당장 오늘 밥을 굶거나 내일 집에서 쫓겨날 걱정은 거의 하지 않는다.
반면, 저소득층, 불안정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한부모 가정 같은 취약 계층에게 경제위기는 곧 "집을 잃을 것인가, 밥을 굶을 것인가, 병이 나면 병원에 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존의 문제다.
소득이 조금만 줄어도 빚이 쌓이고, 공과금이 밀리며, 결국 거리로 밀려날 위험이 현실이 된다. 그러니 같은 시대 같은 위기이지만 그 무게는 공평하지 않다.
이때 국가와 정부, 정치 지도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역할은 명확하다. 바로 가장 약한 사람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위기의 고통을 '각자도생'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제도와 재정을 재배치하는 것. 바로 여기서 사회안전망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사회안전망은 단순히 '착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다. 도로, 전기, 통신망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듯, 복지와 안전망이 있어야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고, 소비, 노동, 교육, 건전한 공동체의 유지가 가능해진다.
촘촘한 사회안전망은 실업, 질병, 사고, 재난이 닥쳐도 바로 빈곤과 노숙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바닥을 받쳐주는 힘'이다. 또한, 한번 아래로 떨어진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복귀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복지 예산, 특히 노숙자 지원과 주거·의료·식량 지원은 단순한 '잉여 항목'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붕괴를 막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빈곤, 노숙, 질병, 범죄가 동시에 늘어나고, 그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훨씬 더 크게 치르게 된다. 그래서 약자 보호는 국가의 첫 번째 의무이다.
일부 정치권은 복지 예산을 삭감하면서 '재정 건전성'과 '작은 정부'를 내세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어디를 줄일 것인가'이다. 군사비, 특정 대기업 감세, 불필요한 특혜와 낭비에는 관대하면서,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최소한의 지원부터 칼을 대는 선택은, 위기의 비용을 다시 한번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전가하는 일이다.
이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정도 수준의 고통은 더 이상 공적으로 책임지지 않겠다"는 냉담한 선언과 같다. 이것이야 말로 반사회적 반국가적 정책이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정치의 초점은 더욱 선명해져야 한다. 필요한 것은 부자 감세나 규제 완화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위기를 버틸 수 있는 버퍼(Buffer)를 가지고 있다. 국가와 정부가 정말 포커스를 맞춰야 할 곳은, 한 달 월세를 내기 위해 두세 개 일을 하면서도 늘 불안에 떠는 사람들, 아픈데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 아이를 먹이고 재울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은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자문해야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가, 아니면 더 나빠지는가?" 이 예산 조정이,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누구도 굶어 죽거나 거리에서 방치되지 않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가? 이 제도가 누군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다리를 놓는가?
다시한번 위대한 미국을 만드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냉담한 효율성이 아니라, 위기의 무게를 공정하게 나누려는 정치적 의지이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은 "여유 있을 때 챙기자"는 부록이 아니다. 바로 지금 같은 어려운 시기에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지켜야 할 마지막 방어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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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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