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 자산관리가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자산을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퇴 전에는 이 방식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산의 목적이 비교적 단순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이 모으고, 최대한 오래 키우는 것이 목표였고, 수익률이 그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하지만 은퇴와 동시에 자산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더 이상 자산은 경쟁하듯 성장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을 안정적으로 지탱해 주어야 할 기반이 된다. 이 시점부터 자산은 하나의 역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구조로 재편되어야 한다.
은퇴 후 자산이 가져야 할 첫 번째 역할은 ‘생활비를 책임지는 소득 자산’이다. 은퇴자는 더 이상 급여를 받지 않는다. 대신 자산이 급여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매달 얼마가 들어오는지, 그 소득이 언제까지 지속되는지가 은퇴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자산의 목적은 수익률이 아니라 안정성이다. 시장상황과 관계없이 지급되는 소득, 오래 살수록 불리해지지 않는 구조,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해도 유지되는 인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역할을 맡은 자산은 흔들리면 안 된다. 오히려 흔들림을 막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두 번째 역할은 ‘유연성을 제공하는 현금성 자산’이다. 은퇴 후 삶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의료비, 가족지원, 주거환경변화, 갑작스러운 지출은 계획표에 미리 적어둘 수 없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접근성이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고, 손실 걱정 없이 꺼낼 수 있는 자산이 있어야 은퇴자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역할을 은행예금이 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규모다. 모든 자산을 은행에 두는 것은 안전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현금성 자산은 필요하지만, 그 비중과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역할은 ‘성장을 담당하는 자산’이다. 은퇴를 했다고 해서 모든 자산이 성장을 포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플레이션과 장수 리스크를 고려하면, 일정 부분의 자산은 계속해서 성장 가능성을 가져야한다. 다만 은퇴 전과 다른 점은, 이 자산이 생활비를 책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장이 하락해도 당장 인출할 필요가 없는 자산, 시간이 충분히 주어질 수 있는 자산만이 이 역할을 맡아야 한다. 성장 자산은 은퇴자의 미래를 위해 존재해야지, 오늘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많은 은퇴자들이 이 세가지 역할을 구분하지 않은 채, 하나의 계좌에 모든 기능을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계좌 하나로 소득도 만들고, 비상금도 쓰고, 성장도 기대한다. 혹은 은행계좌 하나에 모든 자산을 두고 안전하다는 이유로 안심한다. 하지만 하나의 자산이 모든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려할수록, 은퇴자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이 흔들리면 생활비가 걱정되고, 지출이 생기면 장기계획이 흔들린다. 이는 자산의 규모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은퇴 후 자산관리의 핵심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역할로 나누어 놓았느냐’다. 소득을 책임지는 자산이 따로 있고, 유연성을 제공하는 자산이 있으며, 성장을 담당하는 자산이 분리되어 있을 때, 은퇴자는 시장의 변동에 덜 흔들린다. 불안은 자산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산의 역할이 불분명할 때 커진다. 은퇴 후 자산관리란, 돈을 더 벌기위한 전략이 아니라 삶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은퇴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자산은 하나의 방향으로만 움직일 필요가 없다. 각자의 역할을 맡아 제자리를 지킬 때, 은퇴생활은 비로소 안정이라는 형태를 갖추게 된다. 문의 (703)20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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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김 Solomon Financial Solution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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