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4월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톤 항구에 있는 북군의 요새를 남군이 공격 함락시킴으로써 남북전쟁의 막은 올랐다. 북군의 승리로 끝난 4년간의 이 내전은 전쟁터를 제공한 남부는 폐허화 되었으나 북부는 도리어 산업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 수백만명의 유럽 이민자가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오게 되었다. 이들 대부분이 부양가족이 없는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에 매우 생산적이었고 값싼 임금으로 이들을 고용하여 큰 이득을 본 것은 미국의 기업들이었다.
지금 한인 가게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처럼 저임금을 마다 않고 일하는 이들은 고용기회도 많아지고 본국에서보다 생활수준도 어느 정도 높아졌으나 그들의 권익은 무시되어서 고용주로부터 부당하게 해고되거나 임금을 삭감당하기 일쑤였다. 이는 곧 사회문제, 노동문제로 연결되면서 ‘미성년자 노동금지’ ‘8시간 노동제’ 등 노동조건을 개선키 위해 전국노동연합(1866) 노동자 기사단(1869)등이 결성되어 기업들과 맞서게 되었다.
60년대 말 5번가를 걷노라면 한인 보기가 쉽지 않더니 70년대부터 이민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거리마다 진열대 위에 가지런히 쌓여진 야채가게가 24시간 열리고 코너에는 산뜻한 모습으로 단장한 델리가 들어서고 간혹 찾아 즐기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던 젊은 백인 고용인은 간데없고 한국 할머니가 대신 아이스크림을 퍼주는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10년 후 한인과는 관계없는 LA폭동시 엉뚱하게도 최대 피해자가 되면서도 미국사회에서 동정을 못 받는 우리가 되었으니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었다. 고용인과 이웃과의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현명한 사업운영이 될 수 없으며 미국생활에서는 불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값비싼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요즈음 청과식품업을 하는 뉴욕주 한인업주들이 고용인 노조시위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금을 올려주면 경영이 어렵다 하지만 상점 인수시 사업보험은 물론 고용인에 대한 최저임금, 휴가, 보험, 그리고 좀도둑에 의한 손실등도 감안하여 수익을 계산함으로써 노동법을 지킬 수 있게 되고 이윤이 보장되는 정상적 사업운영이 가능할줄로 믿는다. 미국은 법이 지배하는 사회이고 고용주는 노동법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노동절을 보내며 생각해 보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