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영화
▶ ‘바람이 우리를 실어가리’(The Wind Will Carry Us)
★★★★(별 5개 만점)
1997년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버찌의 맛’(Taste of Cherry)을 감독한 이란 최고의 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극본 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심오한 고찰이다.
롱샷을 즐겨 쓰는(그는 모든 것을 관조한다) 키아로스타미가 보여주는 첫 장면이나 작품 전체 분위기가 ‘버찌의 맛’을 연상시킨다. 카메라가 저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며 꼬불꼬불 산 언덕길을 달리는 지프를 포착하면 사운드 트랙으로 차안의 사람들의 대사가 흘러나온다. 관객은 한참동안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 키아로스타미는 대사와 연기 및 영상 등에서 미니말리스트적 처리를 시도, 영화가 지극히 간결하다.
테헤란에서 지프를 타고 이란 쿠르드족이 사는 시골 마을 시아다레를 찾아온 사람들은 엔지니어(베자드 두라니)와 그의 기술자 일행(그러나 나머지 일행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들은 이 마을의 특별 제식을 기록에 담기 위해 온 것인데 이 제식은 늙어 병든 말렉 부인의 사망 후에 행해져 엔지니어들은 이 부인이 죽기를 기다리는 셈이다.
기술자와 마을 사람들과의 중개자 노릇을 하는 것은 소년 파자드. 기술자는 소년을 통해 말렉 부인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데 당초 며칠 예정의 마을 체류는 뜻밖에 여인의 건강이 호전되면서 길어진다.
직설적이요 정적이 가득한 명상적인 작품으로 삶과 죽음, 자연과 문명에 관한 고찰이어서 다분히 철학적이지만 유머러스하고 역설적인 재미도 있다. 감독은 죽음을 삶의 또 하나의 행위처럼 여기면서 공동묘지를 파는 남자의 대사(역시 얼굴을 볼 수 없다)와 땅속에서 나온 사자의 다리뼈 등을 소도구처럼 이용, 현재를 사랑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면 그가 하찮은 서민들과 자연을 몹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는 산골 구석까지 파고든 문명을 유머러스하게 비판하는데 기술자는 테헤란과 셀폰으로 통화할 때마다 높은 곳을 찾아 지프를 몰아 공동묘지가 있는 황량한 언덕 위로 올라가곤 한다. 소와 염소와 닭과 개소리와 셀폰의 소리가 태초 같은 자연과 문명의 거리감을 알려주며 얄궂은 대조를 이룬다.
이 영화는 이야기가 없는 영화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은 관객에게 내가 남겨놓은 공간에 당신들이 이야기의 그림을 그려보시오 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빈곳이 많고 이야기는 가난할 지경으로 없는데도 작품은 영혼이 가득하고 또 아무 것도 안 일어나는 중에 모든 것이 일어난다. 삶이란 너무 평범해 진행이 중단된 것처럼 여겨져도 어쨌든 계속된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전달돼 온다. 그것은 죽어서도 계속된다는 키아로스타미의 철학이 마지막에 냇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인간의 다리뼈에서 잘 묘사된다.
참으로 눈부시게 서정적이요 아름다운 것이 카메라에 담긴 시골의 자연미. 황금빛으로 물든 밭 사이로 난 소로와 노리끼리하게 하얀 집들 그리고 여인들의 검은 옷과 황량할 정도로 검소하고 쓸쓸한 산과 들과 언덕등. 숨이 막힐 만큼 지극한 아름다움이다.
저승과 이승을 모두 다룬 깊이 있는 영화로 내용과 영상미가 모두 보는 사람의 영혼을 풍족케 해줄 훌륭한 작품이다. 성인용. New Yorker. 뮤직홀(윌셔+도헤니), 타운센터(엔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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