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행정이나 특정 선생님에게 불만이 쌓이다 보면 악동들이 작당을 하여 시험지에 답안을 작성하지 않고 제출하는 것을 백지 동맹이라 했는데 학급이나 전교생이 단결하여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뒤에 닥칠 두려움으로 마른침을 삼켜야 하지만 정의의 음모에 가담한 투사처럼 가슴 뿌듯함도 있었다.
단체 기압은 물론이고 주모자는 정학 처분도 감수하여야 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몇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인데 그래도 말썽꾸러기들의 항거는 애교스러운 점이 많았다.
뉴욕의 진보적 미술관 ‘솔로몬 구겐하임’ 뮤지엄에 소장돼 있는 ‘로버트 라우젠 버그’의 ‘고요’라는 뻔뻔스러운 작품이 있는데 이건 백지동맹도 아니고 붓질 한 번 없는 하얀 캔버스를 걸어 놓았다. 미술재료상에나 있어야 할 하얀 캔버스를 덩그러니 걸어놓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Silence를 표현할 수 있느냐고 되묻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의 장르 구분이 애매모호해 지기 전 뉴욕과 독일에서 추상표현주의가 활발한 활동을 하던 1950년대에 ‘존 케이지’의 ‘4분33초’라는 피아노 공연이 있었다. 연주자로 등장한 케이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4분33초 동안 앉아 있으면서 관중들의 호기심이나 지루함으로 일어나는 소음을 역으로 음악화 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들은 음악이며 예술이라는 다분히 선불교식 철학적 이념을 역설했다.
음악이란 소리예술이므로 악기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소리 뿐만 아니라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 것도 연주하지 않는 4분33초의 ‘고요’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역설한다.
우리가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릴린 몬로’에 심취해 있을 때 우리의 안방을 고스란히 내어준 꼴 같아서 얼굴이 붉어진다.
동양의 선불교 철학을 도둑맞은 것 같다는 말인데 ‘로젠버그’의 검정색 작품은 또 어떠한가. 온통 검정칠만 한 캔파스일 뿐인데 붙어있는 이름표 왈 ‘어둠’이다. 뻔뻔스럽기가 이 정도는 되어야 유명한 화가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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