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라 박 글로벌리더십 중·고등학교 교장
정직함조차 부담이 되는 교실
최근 한 학생이 전학을 오면서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있다. 이전 학교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공부의 양도, 시험의 난이도도 아니었다. “치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버티는 것”이었다.
그 학교에서는 시험을 먼저 본 학생들이 문제를 기억해 공유 문서에 올리고, 이후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그 자료를 참고하는 일이 일상처럼 반복되었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은 다가와 묻는다. “어떤 문제 나왔어?” 그때마다 이 학생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해야 했다. 한 번이 아니라, 매 시험마다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친구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원칙을 지키려는 그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흔히 이렇게 반응한다. “그냥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치팅 문화
연구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60% 이상이 한 번 이상 부정행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일부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많은 학교에서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방식이다. 과거처럼 개인이 몰래 답을 보는 수준이 아니라, 이제는 구글 드라이브나 단체 채팅방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협업형 부정행위’로 진화하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기 때문에, 죄책감은 줄고 참여 압박은 더 커진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정직함이 자동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학생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그래서 치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구조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또래 압박
여기서 부모가 잘 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층위가 등장한다. 바로 또래 압박 (peer pressure)이다. 청소년의 약 90%가 또래 압박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리고 그 압박은 단순한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알고 있다. 파티에 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대화에서 소외된다는 것을, 쇼핑을 함께하지 않으면 관계의 거리가 생긴다는 것을, 시험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원하지 않아도 선택한다. 이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이 압박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거절하지 못할 때’이다. 예전에 또 다른 학생이 12학년을 앞두고 전학을 왔을 때의 일이다. 친구들이 숙제를 보여달라고 하면, 그는 거절하지 못하고 늘 보여주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한 친구가 본 숙제는 곧 여러 친구들에게 돌려졌고, 결국 비슷한 답안이 반복되었다.
그 학생은 선택을 바꿨다. 자신의 숙제가 그대로 복제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제출용 숙제를 따로 하나 더 만들기 시작했다. 같은 과제를 두 번 하는 것이다. 하나는 친구들이 보게 될 숙제,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제출할 숙제였다. 그 이야기를 하던 날, 그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말하지 못하고 견뎌야 했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결국 그는 UCLA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이 진학하는 대학에는 가고 싶지 않다며 타주 대학을 선택했다.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관계 속에서 말하지 못하고 참아온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부모가 보지 못하는 침묵의 압박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또 다른 압박 속에 놓여 있다. 비교이다. 이제 비교는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SNS를 통해 친구들의 활동, 성과, 합격 결과까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누군가는 인턴을 했고, 누군가는 연구를 했고, 누군가는 이미 대학 합격 소식을 올린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게 된다.
이와 함께 많은 학생들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인식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힘들지 않아서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그렇게 했어?”가 아니라, “그 상황이 어땠어?”라고 물어야 한다. “몇 점 받았어?”가 아니라, “어떻게 준비했어?”라고 물어야 한다. 결과를 확인하는 질문에서 벗어나, 과정을 이해하는 대화로 들어가야 한다.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가 균형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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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박 글로벌리더십 중·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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