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길을 다시 뚫은 것인가, 고생의 길로 다시 접어든 것일까. 프로복싱 중량급 르네상스를 열었던 ‘골든 보이’ 오스카 델 라 호야가 9개월만에 되돌아온 사각의 정글에서 녹슬지 않은 펀치와 기량을 과시했다.
델 라 호야는 24일 라스베가스 MGM 그랜드호텔 카지노 특설링에서 아투로 개티를 상대로 벌인 재기전에서 5회 1분16초만에 TKO승을 거뒀다.
호야는 이로써 4개 체급을 차례로 석권하며 중량급 최고주먹으로 군림하다 펠릭스 트리니다드와 셰인 모즐리에게 패한 뒤 지난해 6월 이후 얼씬거리지 않았던 링에 화려하게 복귀하며 프로통산 33번째 승리이자 27번째 KO승을 기록했다.
개티는 주먹대결을 앞두고 "델 라 호야가 나를 만만한 타켓으로 잘못 생각했다"며 호기를 부렸으나 그 자신이야말로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는 데는 공이 울리고 불과 몇초도 지나지 않았다. "살아서 물러선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은 델 라 호야측 뻥튀기가 아니라 다름아닌 개티측이 내뱉은 것이었다.
9개월동안 주먹을 닫고 입을 열며 가수로 외도했던 델 라 호야는 1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공소리의 여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개티에게 주먹질을 퍼붓더니 끝나기 20초전쯤 레프트 훅과 라이트 훅으로 기어이 첫 다운을 빼앗아냈다.
2라운드에서는 보다 불길한 조짐이 개티를 덮쳤다. 쉴새없이 불을 뿜는 델 라 호야의 주먹들이 잔뜩 가리고 웅크린 개티의 얼굴 빈구석을 예리하게 파고들면서 그의 오른쪽 눈밑을 찢어놓았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로 보상받기까지의 아마추어 생활을 포함해 링의 섭리(?)를 꿰뚫고 있는 델 라 호야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실력과 커리어에 비해 프로전적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은 데뷔때부터 함부로 덤비는 적수가 별로 없었고 그 또한 전적에 광택이나 내기 위한 싸움을 즐기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그 자신 남의 주먹에 맞아 링을 떠난 처지. 3회들어 델 라 호야는 개티의 찢어진 눈밑에 소금을 뿌리는 전술을 펼쳤다. 그곳을 가리면 복부와 턱을 쳐 커버를 벌려놓은 뒤 연쇄 공격을 가했다. 어찌보면 복싱은 눈싸움. 그러나 개티는 실력도 뒤지면서 대등한 눈싸움을 벌일래야 벌일 수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4회를 그럭저럭 건너뛰고 맞은 운명의 5회전. 뜻밖에도 개티의 반격이 거셌다. 이판사판 저항이었다. 정조준을 하지 않은 채 아무렇게 던진 펀치가 델 라 호야의 왼쪽 눈 윗부분을 찢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치 델 라 호야는 그동안 봐줬다는 듯 더욱 잔인하게 (?) 밀어부쳐 개티의 머리를 주먹에 맞아 연신 춤을 췄다. 5회초 혹시나 하고 잔뜩 흥분햇던 개티의 트레이너는 보다못해 수건을 던지며 항복했다.
"기권하지 않았다면 개티의 생명이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트레이너는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이렇게 완패를 자인해야 했다.
델 라 호야는 자신의 주먹제국을 재건할 수 있을까. 그것만은 아무도 모른다. 그가 트리니다드에게 지고 또 모즐리에게도 져 그렇게 쓸쓸하게 정글에서 밀려날 것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델 라 호야가 다음에 싸워야 할 상대는 개티같은 부류가 아니다. 바로 트리니다드요 모즐리요 또다른 터프가이 ‘고려인복서’ 코스차 추 등이다. 델 라 호야의 부활스토리는 바로 이들을 차례로 정복해야만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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