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네팔왕궁 총격사건 뉴스를 들으며 한인부모들 중에도 가슴이 철렁했을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지난 1일밤 카트만두의 왕궁에서는 만취한 왕세자가 왕실만찬 석상에서 M-16을 난사해 왕과 왕비, 왕자·공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왕자 자신도 자살을 기도해 사흘후 사망했다.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왕세자가 친부모에게 총을 쏘아댄 이유는 결혼문제로 인한 부모와의 갈등이었다고 한다. 29살의 왕세자에게는 결혼하고 싶은 애인이 있었는데 왕실, 특히 왕비가 강력히 반대를 하며 다른 여성을 왕세자비감으로 밀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결혼을 반대한다고 부모에게 총을 쏠수 있겠는가, 권력다툼의 음모가 배후에 있었을 것이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지만, 결혼문제로 인한 왕세자와 국왕부부간 불화는 상류사회에서는 다 아는 일이었다고 한다.
몇년전 남가주에서도 부모들이 가슴 철렁한 사건이 있었다. LA 인근 부촌의 백인 여고생이 가난한 동네 소수계 남학생과 사귀는 것을 부모가 반대하자 해안 절벽에서 둘이 투신자살을 했다.
보통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가장 보편적인 일은 사랑문제인 것같다. 교제나 결혼을 반대한다고 부모에게 총을 쏘고, 자살을 하는 일은 드물지만 아픔의 경험은 참 많다. 우리 친구들의 경우를 되돌아봐도 연애결혼 케이스중 양가 부모가 모두 환영해서 결혼한 경우는 몇 안된다.
부모가 유난히 결혼을 반대했던 한 친구는 그때 “사람이 부모없이 알에서 태어난다면 …”하는 생각을 다 했다. 남자의 직업이나 집안이 돈과는 거리가 멀어서 ‘딸 고생할까봐’반대하는 부모심정이 이해되고, 부모에게 그런 걱정 끼치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엉뚱한 계기로 결혼을 허락받았다. 친척중 한 사람이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집을 나가 버린 일이 생긴 것이었다.
이민 1세대 중장년층이 결혼하던 시절 부모들의 가장 흔한 반대 이유가 ‘가난’‘고생’이었다면, 그 세대가 부모가 되어 2세 자녀의 결혼을 반대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인종·민족’이다. 시인 K씨도 그런 케이스. 딸이 조건 좋은 한인 신랑감을 마다하고 덴마크 남성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그는 6개월을 반대하며 딸과 냉전을 벌였다.
“근본적인 차이는 나는 ‘조건’을 보고, 딸은 ‘사람’ 하나만 본것이지요.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지만 6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앙금이 딸에게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요”
결혼문제를 둘러싼 부모와 자녀간 이견은 각각 못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자녀는 ‘결혼’ 그 이후를 못 본다. 젊은이들에게 인생은 사랑의 결실과 함께 막이 내리는 영화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결혼’과 함께 새로운 막이 오른다는 사실을 안다. 방세·자동차 페이먼트 계산해야 하고, 시집·처가 식구들과 관계 유지하며, 일하랴 자식 키우랴 아등바등 사는 현실에서 좋은 ‘조건’이 윤활유가 된다는 사실을 부모는 안다.
부모가 못보는 것, 혹은 잊어버린 것은 사랑의 힘이다. 자식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부모는 백전백패다. 결혼을 못하게 떼어놓는데는 성공한다해도 그 상처로 자녀가 평생 부모에게 마음을 닫는 일이 종종 생긴다.
사랑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인정한 사실이다. 탈무드에 보면 솔로몬에게는 영리하고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어느날 왕이 꿈에 보니 딸의 신랑감이 영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그래서 딸이 아무도 못 만나도록 작은 섬의 별궁에 감금했다.
그런데 그 별궁에 어느날 하늘에서 한 남자가 떨어졌다. 그는 황야를 방황하다가 죽은 사자의 털가죽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커다란 새가 날아와 사자의 털가죽채 사나이를 들어올려 별궁에 떨어트린 것이었다. 남자는 그곳에서 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서양식으로 하면 사랑의 힘이고, 동양식으로는 인연이다.
부모는 성인 자녀에 대해 아주 이기적이 되거나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 “자식이 제 인생 사는 것이지 부모가 대신 살아줄수 없다”는 태도가 한 방법. 조건에 개의치 않는 뜨거운 사랑에 박수를 보내며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또 다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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