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이라는 폐쇄적 사회에서 이따금씩 스타가 탄생하는데 그 원동력이 되는 것은 명강의다. 몇 달 전까지 KBS-TV를 통해 한국의 전국민을 대상으로 고전강의를 했던 도올 김용옥의 인기도 출발은 대학 강의실이었다.
80년대 초 그를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은 ‘혁명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였다. ‘혁명’이란 단어가 그 어떤 말보다도 자극적이던 당시, 카리스마와 해박한 지식으로 특징지어지는 그의 강의는 마른 들에 불붙듯 순식간에 학생들을 매료시켰다. 수강생, 청강생이 수천명에 달해 고려대학교 당국이 강의실을 대강당으로 옮기는 이변이 그때 일어났다.
교수라면 누구나 ‘명강의’의 꿈이 있겠지만 ‘명강의’는 고사하고 교실 썰렁하지 않게 자리라도 찼으면 하고 바라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좋은 직장이 보장되는 전공분야는 학생들이 너무 몰려 골치인 반면, 순수학문 분야는 수강생이 너무 적어 고민인 강의가 많다.
중동문제, 이슬람교, 아랍어, 테러리즘 등의 강의가 그 대표적인 예. 전공해봤자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인류학자, 고고학자, 골동품 거래상 정도이고 연평균 소득은 2만4,000달러 정도라니 누가 힘들게 공부하려고 하겠는가. 게다가 아랍어는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언어이다. 아랍계 학생들이 간혹 수강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이제까지 중동 관련 학과의 형편이었다.
그런데 9월11일 테러가 터진 후 상황이 바뀌었다. 마침 새학기 개강과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사람 구경하기 어렵던 아랍, 이슬람 강의에 수강생이 밀려들어 교수들이 희색이 만면하다고 한다. 강의마다 수강생이 평소의 2~3배로 늘어난 것은 물론 강의실 정원이 넘쳐 신청자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주 개강한 UC 샌타바바라의 ‘국제분쟁’ 강의. 220명 정원인 강의실에 550명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담당교수는 정원을 300명으로 늘려 수강 신청자를 최대한 수용했지만 나머지 250명을 되돌려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의를 듣겠다고 버티는 학생들 때문이다. 이런 류의 사연들이다.
"내 사촌이 이번 테러로 친한 친구를 잃었어요. 왜 이렇게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 이 전쟁이 어떻게 갈 것인지 내가 알아야 사촌을 위로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 강의는 내게 꼭 필요한 강의입니다”
정규 학과목뿐 아니라 세미나, 포럼이 대학마다 열리는데 중동문제 전문학자들은 제한돼 있어서 이들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아랍계 시민들이 증오범죄 공포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랍관련 학문이 모처럼 빛을 보는 것이 이번 테러가 초래한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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