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공동의 슬픔을 앓고 있다. 월드트레이드센터가 하염없이 무너지던 그 날 높은 하늘 등지고 사람들이 사지 활짝 벌린 채 아래로 떨어지는 그것을 본 후엔, 맨해튼 남단 하늘 트윈빌딩이 자랑스럽게 서있던 그 자리에 영원히 정지된 필름처럼 각인된 그것을 본 후엔, 그것을 보고야만 그 날 후엔, 그 날 우리들의 언제까지나 변하지 말아야 할 우리들의 그 일상이 허물어진 것이다.
우리들 앞에 놓여진 광대무변의 지평선, 허물어진 일상의 바탕 위에 공동의 확실하고 아름다운 그것을 세워야 하는 일, 그러나 나는 지금 인생은 전진이냐 후퇴냐 라는 흑백논리에 강요받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타인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만큼 또 어떠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소모하느냐에 있다. 진실로 살아남기 위해서, 그 자유와 그 행복을 위해서,
그 일이 있은 한 달 지난 지금에도 내 가슴에는 울음의 옹달샘이 흥건히 고여 있다. 그 날 나도 인간 비극의 근원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을 응시하며 현실을 붙잡지 못한 채 슬픔의 둘레에서 서성거릴 수만은 없다. 슬픔은 시효가 지나면 생활의 힘이 되지 못하고 인간을 무력의 늪에 빠지게 한다. 심각하고 대중적일수록 그것이 주는 부정의 위력은 크다. 우리는 지금 무언가 해야만 한다. 그냥 무력함에 허송 세월 하느냐, 최선으로 도전을 하느냐, 겨자씨의 씨알의 희망을 갖고 들에 나가 묵묵히 무릎 접고 흙을 매만지느냐.
그 날 이후 우리를 한결같이 괴롭히는 하나의 질문, 그 날 그 일을 목격한 한 백인여인의 통한처럼, 하나님 당신은 아직도 여기 계십니까. 사람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하나님 당신은 아직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십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한 맨해튼 남단의 그 그림은 또다시 그 자리에 ‘옛 트윈’보다 더 화려하고 높은 ‘제 2의 트윈’이 자리잡는다 해도, 만약 그 남단 거리에 승리의 환호의 물결이 출렁인다 해도 그 슬픈 캔버스는 우리의 의식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캔버스에 지금은 먼저 우리의 드맑은 정신을 그려야 한다.
그것은 이미 그 어떤 물리적인 영역을 떠난 곳에서 우리를 도전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보다 깊은 곳에 우리 실존의 근원에 대한 물음과 해갈과 치료, 우리는 물론 외면해버리고 무기력함에 빠져 잿빛 보좌기에 자신을 묶어놓을 수 있다. 그것은 선택의 자유이다.
인간의 역사는 의지의 역사이다. 지금 나는 내게 주어진 도전에 나를 내어 맡기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슬픔과 절망 아림의 바다를 지나 저쪽 뭍으로 가고 싶다. 나 홀로 아니고 우리 모두 함께, 모두의 벗음과 주림, 두려움이 없는 곳, 허물어진 일상의 땅위에 우리 공동의 확실하고 아름다운 그것을 세우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 당신은 아직 우리와 함께 여기 계십니까. 이 질문, 이것은 인간의 역사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그 순수의자에서 멀리 와 있는가 두려움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너 갔지만 너 붉게 강렬하게/ 순애보의 클라이맥스처럼 갔지만/ 우리는 기다리리/ 우리는 다시 너를 손짓하리/ 양지바른 봄 채 오기 전/ 죽었던 자신처럼/ 새로운 너 우리의 정신처럼/ 푸른 하늘 그 하늘 마음처럼 고귀하게 강하게/ 그 날 잃은 우리 두 손과 마음/ 저 푸른 들 푸른 풀잎 사이/ 강강수월래 무진 무진 피어있는 것/ 우리는 보아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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