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없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잃어버린 어느 한인 부부의 기사를 읽고 나도 밤잠을 설치면서 생각했다. 내 딸을 그렇게 잃어버렸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할까? 상상하기도 두려웠다. 나도 복수를 절대 지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복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데 우리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계속 폭격을 하지만, 그로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또 죽어가고 있다. 복수로는 테러를 근절할 수가 없다.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고민을 가지고 갈등을 하면 할수록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용서와 화해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테러 극렬분자 같은 사람들은 제거해야 하겠지만 그에 앞서 진정으로 국가를 초월한 화해와 협력이 결국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할 때 복수는 문제 해결의 길이 아니다. 남북한 문제가 우리에게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남북관계에서도 용서밖에 없다고 믿는다. 용서가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용서는 불공평한 것이다.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은 관계를 가지려면 억울해도 용서밖에 없다고 믿는다. 복수는 다른 복수를 낳는다. 악으로 악을 이기면 악은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성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다.
나는 미연합장로교회의 이승만목사를 존경한다. 그가 한인 1세로 미국 교단의 높은 지위에 올라갔기 때문이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남북 화해를 위해 앞장 서 달려온 분이다. 북한 방문이 법으로 금지되었을 때 이미 유럽을 통해서 북한을 다녀왔고, 그 후 수십 차례 북한을 왕래하면서 남북관계는 화해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분은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당신이 공산당을 몰라서 그래요. 공산당이 얼마나 극악무도한가를 조금이라도 경험했다면 그런 말을 하고 다니지 못할 것이오”
하지만 그의 부친은 평양에서 목회를 하다가 공산당에게 집단학살을 당했다. 그는 국군이 평양에 들어 온 후 그 현장에 가서 쇠줄로 묶이고 총살을 당한 부친의 시신을 시체 더미 속에서 찾아다가 매장을 하고는 이를 갈며 대한민국 해병대에 자진 입대를 했다.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수년을 복무하면서 복수의 그 날만을 기다렸다. 그런 중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가슴에 맺힌 원한을 제거할 수 없었지만, 결국 “복수는 해결 방법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제대 후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화해’를 사명으로 생각하고, 특히 남북관계의 회복은 오직 화해와 용서뿐이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전국을 다니게 되었다.
나의 부친도 목회를 하다가 6.25때 행방불명이 되었다. 30대에 과부가 된후 86세 지금까지 아버지에 대해 한 말씀도 안 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을 멈출 수 없다. 우리 가족도 피해자이다. 그러나 그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단지 그런 역사가 이 땅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조처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불공평해도 용서의 길밖에 없다고 믿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