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 <민경훈 편집위원>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탈레반 점령지역을 한 치도 탈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뭘 하고 있나”
“내 진작부터 말했지만 미 지상군이 들어가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
“조금 있으면 혹한이 찾아오고 그렇게 되면 전쟁은 내년 봄이나 다시 시작하면 다행이다”
“북부동맹은 오합지졸이고 싸울 생각은 않고 놀고만 있다”
불과 일주일 전 미 언론을 통해 소개된 전문가들의 논평이다. 그러나 이번 주 들어서는 이런 소리가 싹 들어가 버렸다. 불과 닷새 사이 전세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북부 요충인 마자리 샤리프를 장악한 북부 동맹군은 그 여세를 몰아 서부 거점 헤라트와 수도 카불을 순식간에 접수해 버렸다.
이와 때맞춰 탈레반의 지지기반인 파슈툰족 반대파가 들고일어나 동부의 주요 도시인 잘라라바드를 장악했고 남부 거점 칸다하르에서도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까지 전국토의 95%를 장악하고 있던 탈레반은 이제 20%도 유지하기 힘든 상태다. 역사상 이처럼 빠른 속도로 땅을 빼앗긴 전쟁도 드물 것 같다.
그렇다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도 탈레반 지도부는 건재하며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 일도 남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처럼 신속히 탈레반이 무너졌다는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하나는 이들이 얼마나 취약한 집단인가 하는 점이다.
힘없는 주민들에게는 수염 깎는 것부터 옷 입는 것 하나하나 간섭하며 온갖 횡포를 부리다가 전세가 불리해지니까 "목숨을 건 항전… 운운" 하던 태도를 돌변, 일제히 어디론가 도주해 버렸다. 일부에서는 게릴라전을 펴기 위한 작전이란 분석도 있지만 같은 파슈툰 내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탈레반 내에서도 안면 바꾸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이들의 재기는 힘들 것 같다.
또 하나는 전문가들의 오판이다. "미국이 아프간 사태에 개입하면 수렁에 빠져 망신만 당한 소련의 전철을 밟게될 것"이라는 것이 많은 분석가들의 진단이었다. "한달 안에 탈레반이 아프간 거의 전역을 내주고 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배신이 횡행하는 아프간에서 단 한 사람의 밀고만 있으면 죽을 목숨인데도 빈 라덴이 곧 체포되거나 사살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없다. 빈 라덴이 죽어도 테러와의 전쟁은 앞으로 수십 년 계속될 것이며 세계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서양의 엉터리 점쟁이들은 수정구슬(crystal ball)을 보며 자신 있게 미래를 예언한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위험하다. 인간은 당구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쏟아져 나올 온갖 전망을 들을 때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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