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석 목사는, 24년 전 박정희 독재의 칼날이 시퍼런 시절, 몇 안 되는 용기 있는 이들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반정부 운동을 했는데, 민주화가 되자 유독 그만 모습을 감추고 시작(詩作)에 전념하더니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모두들 구호로만 연호하는 통일에 대하여 그는 가슴으로 시를 썼기 때문에, 부친 납북의 상처를 안고 사는 필자에게는 쉽게 공감대를 이루어 그 시에 심취되곤 했다. 14살 막내로 목사인 아버지와 둘이서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아직도 어머니와 형제들의 생사를 모른다.
시인은 가끔 민주화에 헌신하던 이들이 집권후의 변신에 대하여 걱정, 그 속내도 들어내곤 했지만, 동포 사회에서 글 쓰는 이들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가들이 빠지기 쉬운 유아독존의 기미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십년 전 필자는 업소가 불 타버린 뒤 그 속에 쭈그리고 앉아 7개월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시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철을 타고 오클랜드로 찾아와 아무 말도 없이 섰다가 불에 그을린 깡통 음식들을 가격보다 비싸게 사들고 갔다. 그것도 여러 번,
시인은 자기처럼 예수에 미친 젊은이를 내게 소개했는데 그가 아프리카 난민을 섬기는 김평욱 목사다. 그들의 공통점은 목사의 자제, 청년시절에는 드센 반항으로 일관했다는 점, 그러나 돌아온 탕아처럼, 결국 흉내도 낼 수 없는 부친의 대를 이었다는 점,
시인이 부친을 기리며 펴낸 시집 <죽어서 산 사람>을 위하여 크리스챤 라이프 발행인 김평옥 목사는 지난 3월 10일 출판기념회를 마련하였다.
두 분은 필자가 감히 성스러운 성단 위에 서서 <초청인 말씀>을 드리게 한 것도 우리들이 너무나 거목인 아버지들을 가졌다는 공통점 때문인 듯 싶다. 시인은 서문에서 부친의 그림자만 닮았더라도 똑똑 했을 터인데 하는 대목은 사실 필자의 변이기도 하다.
염시인의 부친 염학섭목사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후에는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남하한 분이지만 40년 설교에 한번도 아니 아들에게도 자신이 일본 순사를 두들겨 패어 감옥에 가고, 임시정부의 지하요원 이었던 것을 말한 적이 없다. 정년 퇴직한 후에야 제자 조향록 목사에게 언뜻 비친 적이 있을 뿐이다. 세상을 떠난 10년 후에 조향록 목사가 중국을 돌아다녀 염학목 목사의 독립운동 자료를 찾아와 건국훈장에 추서, 2년 후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염학목 목사는 무서운 예수쟁이였다. 함경도 안수면, 7년째 지랄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작두로 자신의 손가락을 찍어 그 피를 환자의 목구멍에 적셔 넣으면서 간절한 기도를 해 새사람을 만든 분이다.
큰 인물 뒤에는 고생뿐인 가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분은 어린 아들의 생일에 주머니를 다 털어 국밥 한 그릇 사주는 가난한 아버지였다. 시집에 남겨진 사진 만 보아도 훤칠한 키, 한 뼘이나 되는 입과 귀, 그런데도 홀아비로 30년 사목 하다가 세상을 떠난 분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났을 때, 우리가 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출판기념회 마지막에는 염시인의 장남 피터 염 목사가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답례사를 했다. 염(廉)씨 가문은 자신들의 라스트 네임처럼 세상의 鹽(소금)이 되었다.
만찬장으로 가는데, 피터 목사의 국화빵, 4살 된 성일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겅중겅중 뛰어 간다. "너는 보나마나 크면 목사가 되겠구나" 그랬더니 사모님은 "얘도 크면 폴리스 맨이 된데요."
그때 생각났다. 일전에 염 시인이 손자 자랑을 했는데, 성일이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상가건물 앞을 지날 때 "하부이(할아버지)!" 그리곤 뜸을 드렸다. "왜 그래?" 두 살 반 짜리 손자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여기 왈그린 장사 잘돼",
하루는 염시인 부부가 약간의 말다툼을 했다. 이틀 후였다. 손자는 할아버지 손을 잡아끌었다. "여기 여기" 하면서 소파에 앉히었다. 조금 후엔 하무이(할머니)도 데리고 와 옆에 앉히었다. 그러더니 손을 휘저으며 "싸우어 봐, 싸우어 봐 "
그 댁의 4대째는 더 화끈한 목사가 나올게 틀림없다. 증조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할아버지의 독재 투쟁, 할아버지 나라의 통일을 위해 성일이는 행동하는 성직자가 되리라는 예감, 어둠을 뚫고 밤길을 달리며 필자는 예사롭지 않은 불빛을 보았다. 언제나 보아온 평이한 불빛이 어떤 감동에 의하여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촉촉한 불빛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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