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 새라 최 (피아니스트)
초보들이다. 워낙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데다가, 만 일곱살이 지나면 더 이상 귀가 안 발달한다는 보고서가 꽤 신빙성 있어 보였고, 또 남이 잘 못 가르쳐 놓은 아이를 맡아서 고생하는 것 보다 이 편이 훨씬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꼬마들 중 오늘은 영철이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 영철이는 (항상 철이라고 부르니까 이후로는 그냥 철이라고 하겠음.) 지금은 내 학생이 아니지만, 약 2년 정도를 가르쳤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2학년 마칠 때까지 가르쳤는데, 원하는 연령층의 학생은 아니었지만, 내가 반주하는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 목사님의 아들인데다, 그 때는 그 목사님 사시는 동네에 자주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그냥 가르치게 됐던 것이다.
사실 국민학교 (아.. 이젠 초등학교라고 해야 하지, 참.) 2학년 남학생은 돈을 두 배로 낸다고 해도 피아노 선생을 구하기 힘들다. 천사 같던 애들이 그 나이가 되면, 갑자기 사람이 아닌 ‘악마’로 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철이는 워낙 장난꾸러기였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학생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칠 때, Rule #1 이 "Food 나 Drink 는 피아노 근처에 가져오지 않는다" 이다. (물론 #2 는 "매일 한 번씩은 꼭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을 한다" 이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갔을 때, 철이는 사탕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철아, Rule #1 이 뭐지?" 했더니, "No food or drinks at the piano." 라고 똘똘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 지금 뭐 먹고 있어? 얼른 가서 뱉고 오던지, 아니면 저 쪽 가서 다 먹은 다음에 다시 피아노로 와." "선생님. 이건 food 아냐. 이건 캔디야." "캔디도 food 야. 먹는 건 다 food 야. 빨리 뱉던지 저리 가던지 해." 그랬더니, 철이는 "O.K..." 하고는 사탕을 얼른 뱉고 다시 왔다.
그리고는, 피아노 벤치에 앉기가 바쁘게 "선생님. 그럼 코딱지도 food 야?" 라고 물었다.
"철아... 코딱지가 어떻게 food 야... 너 코딱지 먹어?" "아니... 그렇지만 우리 아빠는 먹어..." 윽... 그 고매하고 점잖은 인격의 소유자이신 우리 목사님이... 하여간, "코딱지는 절대로 food 가 아냐! 자 피아노 치자.." 하고는, 렛슨 끝나고 사모님이 냉면 해 놨으니 먹고 가라기에 자리를 같이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목사님께 여쭤보았다.
"목사님. 오늘 렛슨 중에 철이가요, 아빠가 코딱지 먹는다고, 코딱지도 food냐고 물었어요." 했더니, 목사님은 너무너무 당황하시다가, "야, 임마. 너 내가 코딱지 먹는 거 봤어? 얘기해 봐.. 봤어?"
나중에 알고 보니, 목사님의 누나, 그러니까 철이의 고모가 서울에서 놀러 오셨다가, 장난으로 어렸을 때 목사님이 코딱지 후벼 먹었단 얘기를 아마 애들 앞에서 하신 적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철이는 그 얘기를 듣고 나에게... 아이들 앞에선 정말 말조심해야 하는 거란 걸 알았다. 그 날 목사님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물론 다들 덕분에 많이 웃고 말긴 했지만.
초보자를 가르치면서 난 초보를 가르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일인가 하는걸 새삼 느낀다. 그리고, "난 피아노를 잘 못치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으니까 초보나 가르칠래" 라고 말하는 자격 미달의 선생들에게서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게 대부분인 우리 세대의 피아니스트들. 그런 식으로 엉터리로 첫걸음 잡아주는 것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고, 이렇게 별같이 예쁜 아이들에게까지 절대로 전해지지 않도록 더욱 연구하고 공부하는 ‘초보 전문 개인 렛슨 선생’ 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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