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없는 곳에서’ 책 펴낸 작가 이혜리씨
"작가로서 결과물에 대해 100퍼센트 만족할 순 없겠지만 다 쓴 원고를 1,000번 이상 다시 읽어보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지난 97년 북한에 있는 외삼촌 이용운씨 일가를 극적으로 탈출시킨 자신과 아버지 이재학씨의 체험을 담은 신작 ‘해가 없는 곳에서’ (In the Absence of Sun)를 펴낸 이혜리씨는 새 책을 완성한 행복감만큼이나 치열한 산고에 지쳐버렸다. 그래서 요즈음 좋은 책을 벗삼아 자기만의 ‘산후 조리’를 가졌지만 지난 26일 한국문화원에서 시작한 북 사인회 일정이 미시간, 동부 등지로 12월까지 줄줄이 이어져 당분간 달콤한 휴식은 또 어렵게 됐다.
북한 혜산과 압록강으로 맞붙은 중국 장백을 수차례 오가며 8개월간 시도한 숨막히는 구출작전과 지난 5년간 하루 평균 12시간씩 커피를 주식으로 삼아 매달린 자료수집 및 글 쓰기가 이번 작품을 만들어낸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 당시 경험했던 많은 기억과 살아있는 감정을 다시 불러내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그녀는 "그때그때 기록했던 생생한 흔적이 큰 길잡이 구실을 했다"고 말했다.
96년 발표한 ‘스틸 라이프 위드 라이스’(Still Life with Rice)에 북한 외삼촌이 보낸 편지를 그대로 소개한 것이 구출작전을 감행한 단초가 됐다. 이 책을 낸 뒤 이씨는 미국 내에서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는 강연활동을 펼쳤는데 이를 본 북한 당국이 외삼촌 일가를 가만두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들을 빨리 구해내야 한다는 이씨 가족들의 절박함이 앞섰다.
이번 작품에 자리잡은 두 갈래 중 하나가 기나긴 탈출작전의 과정과 예상치 못한 위기에 대한 생생한 체험담이라면 다른 하나는 가족을 묶은 견고한 끈이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이룬 47년만의 재회만큼 감동적인 것은 가족구성원이 서로를 위해 얼마만큼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씨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원동력이 가족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온화한 분으로만 알았는데 구출작전에서 보여준 강인한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하는 그녀는 "친형제도 아닌 처남 일가를 위해 아버지가 한 일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보고들은 경험들이 책 전편에 담겨 있지만 지명과 등장 인물들의 이름은 어느 정도 수정됐다. 한국 정보기관이 책 쓰는 것을 만류했지만 아버지의 격려가 굳건한 버팀목으로 서 있어 가능한 글 쓰기였다.
제목 중 ‘해가 없는 곳’은 북한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반영한다. 이씨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그 정치체제를 비판할 수밖에 없다"며 "내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한 솔직한 의견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스틸 라이프 위드 라이스’ 이후 주류문단의 주목을 받고 집필과 강연으로 바쁜 생활을 해온 이혜리씨는 결혼은 한참 뒷전이었지만 기다리던 배필을 찾았고 조만간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다. 그녀의 약혼자는 동부 출신 비디오 편집자인 피터 염씨. 최근 완성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며 만나 미래를 약속했고 LA에 보금자리를 꾸밀 작정이다. ‘나 같은 마초’(Macho Like Me)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이씨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고. 글 쓰기 외에도 문화활동 다방면에 호기심이 넘치는 이씨는 한인 방송을 통해 2세들을 위한 영어 토크쇼를 진행하고픈 꿈도 갖고 있다.
<이재진 기자> jjrh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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