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 <목회학 박사. 종교전문기자>
죽음과 삶의 문제는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이란 사람의 숨이 멈춰지는 육신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삶이란 태어나 죽어 가는 그 순간까지의 과정을 의미한다.
셰익스피어의 명언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지금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명구(名句)에 속한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을 어떤 사람들은 ‘고’(苦)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행’(幸)이라고 말한다. 고는 고행이요, 행은 행복을 뜻한다. 같은 인생을 살면서 고행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행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음은 어인 일일까.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길이 이렇게 다름은 과연 어디에 그 이유가 있을까.
너무 많이 알면 혹은 너무 많이 알려면, 사람은 고행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너무 많이 알면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많게 된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우물쭈물’ ‘요리조리’ 생각을 많이 하다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머리 속이 복잡해 골치 아파지면 삶은 고(苦痛)로 빠지게 된다.
이러기에 어쩌면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자존심 팽개치고 주어진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예스, 예스’만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발전은 없을지 몰라도 삶 그 자체는 행복할 것 같다. 단순한 사람에게는 ‘하루하루’ 무사히만 넘어가면 그걸로 ‘만사(萬事) 오케이(OK)’가 될 수도 있기에 그렇다.
나의 아버지는 90세가 넘어 1996년 11월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도 건강하여 자식들에게 큰 고생을 시키지 않았다. 아버지의 돌아가신 그 모습은 아주 평화스러웠다. 임종을 지켜보지는 못했으나 입관해 누워 있는 아버지의 손을 만져보니 하루가 지났는데도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관 날, 동그라미 무지개가 하늘에 떠있었다.
경상도 울산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홀홀 단신 강원도로 와 살았다. 점원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한 아버지는 신용을 얻어 나중엔 큰 부자가 되었다.
학교는 많이 다니지를 못했다. 그리고 결혼 해 자식을 낳았는데, 현재 살아있는 자식만 아홉이다. 또 손자, 증손자들은 약 40여 명에 달한다. 거의가 다 미국에 살고 있다.
천애고아(天涯孤兒)로 자라 아홉 자식을 낳고 90이 넘도록 살다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지동설’(地動說)같은 것도 모르고 살다 가셨다.
오로지 자식들 잘 되기만을 바라며 사셨다. 한국에 있을 때는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자식들 고생도 시켰으나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자식들은 보았다.
미국에 들어와 뉴욕에 살 때는 손자 손녀들 과자라도 사 줄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빈깡통과 빈 병을 모으러 다녔다. 남들이 보기엔 안돼 보였을지 몰라도 70, 80이 넘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것들을 모으러 다니며 행복해 하셨다. 그리고 새벽에 걸어 다니는 것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며 남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참으로 아버지는 단순하게 살다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세상은 돈 없으면 안돼, 돈을 벌어야 해!"라고. 그 때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신앙으로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 뭐 이런 말이었다면 몰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은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그것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단순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단순한 한 마디 말속에 세상 사람이 추구하는 거의 모두가 들어있음을 요즘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무전유죄(無錢有罪)요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세상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삶은 인생의 갈림길이다. 죽지 않고 일단 살아 삶을 살아야 한다면 먹고살아야 하는 경제(經濟)의 기본은 해결되어져야 한다. 기본 경제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머리 속이 복잡하게 구성된 ‘자존심’같은 것은 훌훌 던져 버려야 할 것 같다. 경제가치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동설(地動說)도 모르지만 행복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는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못 한다’는 단순 진리를 나에게 가르쳐 주어 요즘도 복잡한 내 머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고민한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살아봄도 복잡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해 지는 비결 중 하나임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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