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월 좋았을 때의 일이다.
미국의 모 유명한 제약회사에서 공로가 많은 20명의 의사를 특별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일류 호텔에 초청하였다. 자사 제품에 대한 설명과 연구 결과의 토론시간을 가진 후 부부를 그 주변의 와이너리를 포함해서 관광시켜주며 일종의 특별대우를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만나는 시간은 토요일 아침 7시, 단 모두 정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우를 받는 입장으로서 토요일 아침 새벽부터 정장을 하고 나타나야 하는데 불만이 있었지만 어차피 약속이므로 7시 정각에 나갔다. 그중 19명이 모두 정장을 하고 토요일 새벽에 회의장에 나타났고 한 명의 인도 의사만 30분 뒤에 나타났다.

그 주말 있었던 새로운 관광여행도 인상적이었고, 새로운 약품에 대한 지식도 좋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꼭 정시에 약속을 지켜 서로 만났다는 그 자체가 내게는 아직도 너무도 감명적이다. 실제 일의 내용보다 그것을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 서로간의 신뢰가 더 흐뭇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현실로 돌아와서 예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 상담자가 세 번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고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점잖게 “저 선생님은 첫번째 예약을 하고 그냥 안 오셨고, 두 번째는 한시간 전에 해약을 하셨고, 세 번째는 오늘 40분 뒤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도 장사하기 곤란하지 않습니까? 지금 약속된 분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까 1∼2분만에 문제의 요건만 말씀하시고 다음 번에 다시 만나야겠습니다.” 하였더니 그분의 대답은 “차∼암 답답하네요, 선생님도, 아, 뭐 내가 매번 약속 다 지키고 1∼2분만에 내 문제가 무엇인지 딱 이야기 할 수 있다면 뭣하러 여기 옵니까?” 하고는 도리어 화를 내는 것이었다.

내가 레지던트로 있던 코네티컷주 대학병원에서 재미있는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정신과 외래에 와서 치료를 받는 사람들과 예약을 하고 취소한 사람들과 정신과 진료상담 예약을 애초 안한 사람 세 그룹을 조사해 보았더니 상담하고 치료받은 사람이 좋아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재미있는 것은 전혀 상담 요청을 안한 사람보다 예약만 하고 취소한 그룹이 문제가 상당히 좋아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유는 적어도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다는 것”은 “자기의 문제가 있다는 것”과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모든 중독증 치료 및 대부분의 정신과 문제를 해결하는데 첫 번째로 필요한 요소들이다.

이 두 가지만 절실히 본인이 느낀다면 이미 그 자체로 자기 스스로에게 가해진 스트레스를 완화 시킴으로써 문제를 더 여유 있게 볼 수 있게 되고 동시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거나, 또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자 여러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정신과 상담을 예약하십시오. 그리고 취소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