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거울을 들여다본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한 곳은 바울 사도가 사랑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한 후에 ‘이제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볼 때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전 13:12). 다른 한 곳은 야고보서인데, 행함이 없는 그리스도인을 꼬집어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고 곧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약 1:23-24). 두 번 모두 부정적으로 사용된 셈입니다.
거울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것이 왜 희미하게 보는 것일까요? 옛날 거울은 요즈음 거울보다는 확실히 질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물관에서 보는 소장품처럼, 녹이 낀 상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옛날의 거울도 다른 어떤 물건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켜 보기에는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모습은 외모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외모는 우리가 보아야 할 실체가 아니란 뜻입니다.
우리의 눈은 겉모습만을 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이 비 기독교인의 삶과 구별되지 않는 커다란 이유도 우리 기독교인들의 눈이 여전히 겉모습만 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겉모습만을 본 사람은 ‘자신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곧 잊어버립니다’ (약 1:24).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장내부를 보는 내시경이나 울트라사운드 같은 것이 있듯이, 우리의 심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당신은 자주 이 거울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물론 두려울 것입니다. 특히 이 거울로 남이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끔찍이 싫을 것입니다.
내 속에는 내가 알고있는 것보다 추한 것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지혜롭게 살려면, 나의 속을 살피는 거울이 필요합니다. 남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나는 스스로의 속 사람을 들여다 볼 특수한 거울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부지중에 떠났다가도 곧 바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내 눈의 들보를 금새 볼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은 속 사람을 비추어보는 거울을 성도들의 마음에 심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약 1:21).
한 규 삼 (나성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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