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 <종교전문기자. 목회학 박사>
신학(神學)의 과제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선악(善惡)에 대한 출처를 밝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현대 신학자들이 풀지 못하고 있는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특히 보수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악에 관한 문제는 전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기도 하다. 선과 악의 출처는 인간과 신과의 관계에 크나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학은 하나님 곧, 신에 관한 학문이다. 영어로 신학(Theology)은 신(Theo)의 학문(Logy)이다. 그렇지만 신학은 인간학과 동전의 양 면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신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신을 설명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그렇다. 이렇듯 신 자체의 근거가 인간으로부터 설명 되야 하기에 신학과 인간학은 떨어질 수 없게 된다.
기독교 신학에 의하면 신 곧,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우주 만물의 창조주다. 우주 만물 안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흔히 신학생들이 교수에게 하는 질문 중 하나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며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면 악은 어디서부터 오며 왜 존재 가능케 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악’이란
기독교에서는 원죄(Original Sin)를 들어 이 악의 도래를 설명하려 한다. 성서엔 하나님이 최초의 남자 아담을 창조했다. 그리고 여자 이브를 창조했다. 인간을 만들어 놓은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다른 과일은 다 따먹어도 괜찮으나 에덴동산의 선악과(善惡果) 만은 따먹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이브가 선악과를 먼저 따먹고 아담에게도 권했다. 이것이 원죄다.
성경 대로라면 인간은 원죄를 지음으로 이 때부터 선과 악을 알게 됐다고 한다. 벌거벗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다가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부터 부끄러움을 알아 아담과 이브는 치부를 가리기 시작했다고도 풀이한다. 인간의 조상 아담과 이브의 하나님에의 불복종으로 원죄가 들어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설명된다.
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데로 한다면 갓 태어난 아기라도 원죄에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기독교 교리는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기 위해 하나님 자신은 예수로 이 땅에 태어나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 그 구원은 인간이 가진 원죄까지도 사함을 받는 것이다.
새벽기도를 가던 할머니가 강도에게 가방과 성경을 빼앗기고 폭행당한다. 교회의 밴이 학생들을 싣고 수련회에 참석하다 전복해 학생들이 죽거나 다친다. 교회의 목사가 교회에서 강도들에게 살해당한다. 가톨릭의 수녀가 괴한으로부터 강간당한다. 예배중인 교회에 괴한이 침입, 총으로 신도들을 무차별 사격해 죽이고 다치게 한다.
이런 일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이런 경우 "전지전능의 하나님은 왜 이 사람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하는가?" 란 질문이 성립된다. 종교가 없어도 착하게 사는 사람들은 있다. 그들은 시민의 의무인 세금 꼬박꼬박 내며 남을 해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불시에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일이 있다.
그렇게 당한 사람들 중엔 평생을 당할 때의 악몽에서 벗어 나오지 못해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경우 그 사람들에게 그들이 갖고 태어난 원죄 때문에 당한 것이라고 설명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가해진 악(惡)적인 조건은 다분히 사회구조적 모순과 사회악적인 요소에 기인된 것이기에 그렇다.
9.11테러 때 죄(여기서 죄는 원죄를 나타내지 않는다) 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그들은 미국에 살고 있다는 특히, 뉴욕 쌍둥이 빌딩에 있었던 한가지 이유로 테러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도 죄 없는 시민들은 죽었다. 그들은 이라크에 살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로 전쟁 중 총탄과 폭탄에 맞았다. 둘 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희생된 케이스다.
"전지전능의 하나님이라면 왜, 이 땅에 악 적인 존재인 범죄와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모두가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는 평화로운 곳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가. 왜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보고만 있나?" 그러나, 선과 악의 문제는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학적인 문제인 것 같다.
선과 악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 만들어지는 뿌리는 선은 사랑과 자비요, 악의 뿌리는 욕심인 것 같다. 인간 속에 함께 내재해 있는 이 두 뿌리에서 어떤 가지를 치냐에 따라 선과 악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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