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은 얼마나 눈 구덩이 속에 살았던지 4월이 넘어서도 폭설이 찾아오더니 날이 풀리자 주말마다 장마같은 비가 내렸다.아마 나처럼 추위를 많이 타고 게으른 사람은 아직 겨울 옷 정리를 못했을 것이다.
간간이 갑작스런 여름날씨를 보여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올랐다가 다음날 다시 추운 바람이 몰아쳐 연연한 봄기운을 무색케 한 적도 있다. 오락가락 하는 날씨 속에 노란 개나리꽃이 새하얀 눈 속에 폭 싸여 있더니 자목련과 순백색 목련도 그 잘생기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도 전에 하르르 지고 있다.
자동차의 히터를 켜다 다음 날은 에어컨을 켜야 하다니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목련이 지는 자리에 라일락이 피어나고 있어 뉴욕의 올해 날씨는 겨울에서 바로 여름으로 건너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실종된 줄 알았던 봄이 화악 피어올라 천지 사방에 꽃이 만개했다. 그 칼날처럼 차갑고 무서운 겨울 바람을 헤치고 밀려온 봄, 대지는 솟아오르는 봄기운을 더이상 주체할 수 없었나보다.
봄의 실종(?)이 혹여 사람과 사람간의 믿음, 인간성까지 실종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은근히 걱정되었던 터라 해사한 햇볕이 반갑기 짝이 없다.지난 몇 달 간 이라크 전쟁에다 최악의 불경기,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의 발병으로 장거리 여행도 겁나는데다 날씨까지 고약하니 사람들의 마음도 별로 맑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쟁 여파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고 아무리 내 형편이 무참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기본 도리는 저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한인사회는 그동안 참으로 복잡다단한 일이 많았다. 무조건 자기 주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배려와 양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믿음, 법, 질서가 실종된 사회를 상상한다면 지옥이 따로 없다. 봄이 실종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받은 친구의 이 메일 중에 이런 귀절이 있었다.
“지겨운 스팸 메일을 지우다가 제대로 된 편지 한 통이 있으면 반갑다. 며칠 전 네 메일이 그러했기에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스팸 메일 속에 있는 반가운 편지 같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다.”매일 아침 이 메일 박스를 열면 수북히 쌓인 스팸 메일을 지우는 것조차 스트레스이다.
최근 미국의 인터넷 대기업 AOL과 마이크로소프트, 야후가 스팸 메일 퇴치를 위한 공동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스팸 메일은 여전히 오랫동안,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이 메일 박스를 최대한 차지하여 지우는 수고, 진짜 편지인지 스팸 메일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시간의 낭비를 부여할 것이다.
수십 통 쌓인 광고나 음란 사이트 스팸 메일 속의 ‘반가운 편지 같은 사람’, 그러한 사람이 우리도, 나도 되어보고 싶지 않은가.상쾌한 아침을 여는 새벽 햇살, 제어할 수 없게 강하게 밀려오는 봄기운, 스팸 메일 속의 반
가운 편지 같은 사람이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한인사회에도 제법 있다.
그것도 이민 1세들이 아랫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한국말도 서툰 1.5세, 2세들이 후배를 돌봐주고 챙기는 것을 보면 기특하고 고맙기까지 하다.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건강검진으로 자신을 키운 한인사회에 봉사하는 의사, 바쁜 시간을 쪼개어 후배들을 위해 법률 세미나를 수시로 갖는 변호사, 노인들을 위한 통역 서비스 및 이민자의 권익을 위해 발로 뛰는 소셜워커 등등.명문대학 졸업 후 전문직업을 갖고 주류사회에 안주한 사람도 많은데 자신의 일을 누구 못지 않게 잘해 내어 주류사회에서 인정받으면서 황금같은 시간과 능력을 동포를 위해 희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반가운 편지’같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 모두 스팸 메일 속의 반가운 편지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 설령, 봄이, 가을이 실종되었다 해도 우리는 별로 괘념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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