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파원 코너
▶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미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한 후 취한 첫 조치는 현지통화인 디나르를 폐기하고, 달러를 뿌린 것이었다. 점령군으로서 사담 후세인 얼굴이 그려진 지폐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기 싫다는 뜻이다. 이런 표면적인 이유 이면에 이라크 경제를 달러 영향권에 포함시키는 의도가 숨어있다. 포탄으로 후세인 정권을 교체했지만, 이라크 경제는 달러라는 경제 무기로 접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전후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과 프랑스를 축으로 하는 반전 동맹이 세계를 갈라놓았다. 세계를 분열시킨 이유가 전쟁과 평화와의 명분 싸움만이었을까. 그 이면에는 달러와 유로의 헤게머니 전쟁이 내재해 있다.
버클리대 스티븐 코언 교수는 이라크 문제에서 프랑스가 미국에 대항한 배경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토권 때문이 아니라,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유로를 달러 미사일 공세를 저지하는 방어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유로는 1일 현재 1.12 달러로 4년만에 최고로 치솟았고, 이대로 간다면 탄생 초기의 환율 1.17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유로가 힘이 넘쳐나고, 달러가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환율의 문제와 국제 시장의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은 별개다. 지금 달러가 약세는 미국이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유럽 공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며, 이는 80
년대말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달러 약세에 힘입어 일본 자동차 회사를 누른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달러 헤게머니다. 전세계의 원유 거래는 달러를 기준으로 이뤄지고, 후세인 정권 하에서도 이라크는 디나르화를 달러에 고정해서 운용했었다. 그만큼 달러의 위력이 막강하다. 미국 외에 전세계에 도는 달러가 미국내 달러보다 2배로 많다. 이것이 미국 무역 적자의 비밀이다. 미국이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를 정도로 무역 적자에 시달리면서도 경제를 운용하는 것은 달러를 찍어 외국의 물건을 이자 없이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96~97년 경상수지 적자가 불어나면서 외환위기에 처한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이 1,000억 달러에 가까운 전쟁 비용을 치르면서도 거뜬한 것은 달러 주도하의 국제금융시장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가 재정 적자를 국채(TB)로 전환하면 뉴욕 월가가 이를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헤게모니와 뉴욕 월가의 금융시스템이 미국을 최대 군사대국으로 만들었고,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의 재정적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이에 프랑스가 유로를 무기로 미국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코언 교수는 유로가 없었다면 미국이 쉽게 프랑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넣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956년에 프랑스가 영국과 공동으로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을 때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프랑화와 파리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것임을 암시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수에즈에서 물러났다.
유로화는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첫번째 목표는 유럽을 통합해 유럽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드골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프랑스가 강력해지려면 프랑스의 정치적 리더십과 독일의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유럽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후 프랑스의 엘리트들은 미국을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유로라는 대안을 고안해냈고, 이를 통해 세계 경제와 정치에 역할을 증대시키려 했다.
유로가 통용된지 4년이 지나면서 이제 프랑스와 독일은 달러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하자마자 달러를 공급한 것은 유로의 영향권을 유럽 대륙으로 제한한 것이다.
달러 영향권에 속해 있는 한국은 어찌될 것인가. 연초에 반미 운동으로 해외자본 투자가 줄어들고, 증권시장에 투자한 외국인이 주춤하면서 경제가 휘청거렸지만,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외평채 가산금리가 하락하고, 증시가 회복했다. 국제 정치와 경제의 헤게모니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